친애하는 동료 여러분. 선교성회에서 조선을 여러분에게 맏기려고 하였다는 것과 여러분은 적어도 당분간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고 계시다는 것을, 모든 포교지에 보내신 공동편지를 읽고 알았읍니다. 돈도 없고, 선교사의 수효는 적고, 다른 포교지에 부족한 것도 많고, 그 지방에 들어가는 데 거의 극복하지 못할 난관이 가로 놓여 있고, 또 불행한 신입교우들이 선교사들을 국내에 인도하여들이는 데 사용하겠다는 방법이 부족하고 한 것이 이 일을 좀 더 좋은 시기로 미룰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생각을 여러분은 가지셨읍니다...소조뽈리스 (Sozopolis) 주교님은 우리 회가 할 수 있는대로 빨리 이 포교지방을 맏아 주기를 진심으로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사정을 편지로 여러분께 말씀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 일이 성공하기를 원하시는 주교님의 열의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내 열의를 당하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 불운한 교우들에게 이익이 되기를 원하는 간결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이 편지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들에 대하여 아주 착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다만 달리는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직 몇 해를 더 기다리기로 결정하였으리라는 것을 미리부터 확신하는 바입니디. 이러한 동기는 찬성할만하고 매우 슬기로운 것이며 성소에서도 거기에 동조하는듯 하였읍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아주 해결되어서 다시 논의되고 재검토될 수 없을 지경으로 되었읍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이유를 하나 하나 되살려 가면서 몇 가지 의견을 첨부하고자 하니, 이것을 祭臺(제대) 아래에서 검토하시고 세심하게 고찰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감히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잘난체 한다거나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들에게 충고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고, 오직 내 양심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1. 우리는 기금이 없다. 그러나 전교회의 덕으로 수지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그뿐 아니라 선교성소에서 몇 해 동안은 보조를 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보조금들은 끊어질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겠지요. 회원이 원하면 언제든지 탈퇴할 수 있는 회에서는 모든 것이 불안정하니까, 그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시작된지가 불과 얼마 안됩니다. 프랑스에서 이 사업을 시작한 교구는 반이 될까말까 합니다. 포교지에 대한 열의가 지금 막 생겨난 참입니다. 그러니까 몇 해 동안은 이 열의가 식지 않을 것입니다. 좀 더 지나면 이 열의가 식을 수도 있겠지요. 사람이 하는 일이란 이런 운명을 타고 났고, 더구나 프랑스에서는 다른 어떤 곳에서 보다도 더욱 그러하니까요. 그러나 그 때까지는 지혜롭게 절약을 하며 만일의 경우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이고, 또 내일을 너무 걱정하여 섭리를 모욕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천주께서 새로운 財源(재원)을 마련하여 주 실 것입니다.
우리 신학교에서 일찌기 불가능한 일을 하기를 거부한 적이 있었읍니까. 모든 희망이 없는 것 같아 보이던 그 때에 포교지 중의 하나라도 포기한 일이 있었읍니까. 그런 일을 없었지요. 우리는 천주께로 눈을 돌이켰으니, 악에서 선을 끌어내실 수 있는 그 분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고, 우리의 희망은 저버려지지 않았읍니다. 천주께서는 포교지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기적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 경우에 있어서는 천주의 전능이 작아졌단 말씁입니까. 혹은 우리의 신앙과 망덕이 줄어들었단 말씁입니까.
2. 우리는 선교사가 없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이유 중에서도 가장 약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젊은 신부들이 포교지방을 지원하는 수효가 지금보다 더 많았던 때가 언제 있었읍니까. 공동편지에는 한꺼번에 15명 내지 18명까지 지원자가 있었다는 말이 있읍니다. 그리고 매일 같이 다른 지원자들이 많이 올 것을 기대한다고 하였읍니다. 하기는 신학교에 들어왔다가 병으로 인하여 돌아간 사람이 몇은 됩니다. 그러나 언제고 다시 올 희망을 포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지 않았읍니까. 그뿐 아니라, 지원자가 없다고 우선 가정한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이 하면 틀림없이 지원자들이 얼마든지 모여들 것입니다. '교훈이 되는 세 서한 집' (인도와 중국 등지에서 선교사들이 보낸 서한을 수록하여 간행한 단행본. Nouvelles Lettres edifiantes des Missions de la Chine et des Indes Orientales, t. 1~5, Paris 1818~1820.) 의 조선이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를 모두 인쇄하고 거기에다가 열심한 주선교우들이 여러번에 걸쳐 우리 교황성부께 올린 편지도 인쇄하여 넣으십시오. 그 寫本(사본)은 쉽게 장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프랑스의 소신학교와 대신학교에 전부 보내며, 성품을 지망하는 그 모든 신학생들의 애덕과 열성에 간절한 호소를 하십시오. 그러면 오래지 않아 선교사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나는 프랑스 사람들의 성격을 잘 압니다. 이 위험한 포교지에서 봉착하게 될 가지 가지의 어려움은 그들의 일성을 자극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불어 넣어 주는 역할 밖에는 하지 않을 것이니, 지원자 한 사람을 구하면 열 명이나 올 것입니다.
3. 다른 포교지에도 급한 일이 많다. 급한 일은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저 불쌍한 조선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것만큼 급한 일은 없읍니다. 그 도움이 없이는 그 불쌍한 삶을 계속하여 나갈 수 없는 불행한 사람을 돕기 위하여는 필요한 것까지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애덕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천주교를 위하여 그렇게도 많은 공을 세운 수많은 열심한 신입 교우들에게, 더구나 신덕이 아직 약하고 가지가지의 유혹에 둘러싸여 있는 수천 명 교우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친다는 것도 역시 이 의무가 엄중히 명하는 것이 아닙니까. 지구 저 끝에 있는 저 불우한 교우들은 여러 해 전부터 교우들의 공통 아버지이신 교황께 두 손을 모아 쳐들고 구원을 청하고 있읍니다. 모든 교회를 맡아 보살피시는 그 분은 우리 회를 선택하신다는 영광을 우리에게 내리셨고 두 번이나 우리의 애덕에 호소하셨읍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직도 기다려야 된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조선은 우리 포교지에 속하지 않았으니 우리는 거기 대한 책임이 없다고 말할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나도 동감입니다. 그러나 자선섬이 있는 아버지는 자기 아이들에게 먹일 넉넉치 못한 음식을 조금 떼어서 자기 발 아래에서 숨이 져 가는 불쌍한 나그네를 도와주는 것을 의무로 생각할 것이라는 점에는 여러분도 나와 동감일 것입니다. 신부 한 두명 쯤 줄어든다 하여도 우리 포교지 전체로 볼 때에는 그리 큰 공백상태를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버림 받은 포교지로 볼 때에는 이 신부 두 명이 말할 수 없는 은혜가 될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샴 (태국) 포교지에 관심을 가진다 하더라도, 여기에 선교사 한 분을 빼내어 슬픔에 잠긴 저 포교지방에 보내는 것은 조금도 가슴 아파하지 않겠읍니다.
4. 그 나라를 뚫고 들어가기가 힘든다. 이 점이야말로 여러 가지 반대 이유 중에서 가장 그럴듯하다는 것을 나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결국 어떤 계획이 어렵다고 하여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또 세속의 자식들은 그들의 이해 관계가 개재하여 있을 때에는 곤난 때문에 물러서는 법이 없읍니다. 그러면 광명의 자식들만이 천주의 영광과 사람의 구령사정에 있어서 겁을 내고 소극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북경에서 출발한 중국인 신부 한 분이 조선에 들어가 박해가 극심한 가운데서 여러 해 동안 성직을 행하다가 영광스러운 순교로 포교사업을 끝막았는데, 四川(사천)이나 山西(산서)에 가 있는 서양인 신부는 그렇게 할 수 없단 말씀입니까. 몇 해 되지 않는 동안에 편지 여려 장을 로마에까지 보낼 수 있었던 조선사람들이 신부 한 사람을 자기네 나라에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겠읍니까. 나는 여러분이 어떤 대답을 하실지 미리 알고 있읍니다. 편지는 북경을 거치게 된다고, 거기가 유일한 연락점이라고 하시겠지요. 그러면 북경에 편지를 보내서 山西省(산서성)이나 四川省(사천성) 이러 저러한 읍내에 조선교우들을 기다리는 선교사가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립니다. 조선교우들에게 연락한 다음에는, 조선으로 향하여 길을 계속할 방법을 강구합니다. 중국인 보행군의 인도로 만리장성까지 가야 할지를 생각하여 봅니다. 만날 장소와 암호를 정합니다. 슬기롭고 약삭빠르게 행동하기 위한 모든 방법을 강구합니다. 이리하여 마침내는 성공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넘을 수 없는 난관이 가로 놓여 있어 저 나라에 뚫고 들어가기가 불가능하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불가능한 것을 해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눈에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천주께는 불가능하지 않으니까요. 바다로 해서 조선에 들어오라고 일러준 방법은, 서양인이 조선과 조금도 부역을 하지 않기 때문이든지 조선 沿岸(연안)으로 가끔 무역을 하러 가는 중국인들의 성실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든지, 실천에 옮길 수가 없다는 의견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프란치스꼬 사베리오 성인이 이런 생각 때문에 중국 해적선을 타지 않게 되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최초의 敎區長(교구장)들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자기네 교우들을 찾아가야 하였을 때에 중국인들의 성실성을 믿지 않았읍니까. 이것이 안전한 방법이 아님은 나도 인정합니다. 중국인들은 자기들이 인도하는 나그네들이 돈을 가졌다고 생각할 때에는 가끔 그들의 목을 베어 죽이는 일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뿐더러 신중에 신중을 다한 뒤에 오직 천주의 명령을 준행하겠다는 마음 만으로 닥쳐올지도 모르는 위험을 용감히 무릅쓰는 경우에는 천주의 특별한 섭리를 바랄 수 있는 권리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겠읍니까. 천주의 명령을 준행한다는 말씀을 하였읍니다. 이 말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 나왔읍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삭제한다든지 조금이라도 바꿔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천주께서 당신 사도들에게 가서 만민을 가르치라는 명령을 밝히 내리실 때에 조선을 빼놓으신 것입니까. 그러나 지금과 같은 환경 속에 놓여 있는 저 관심 끄는 교회를 위하여는 이 명령이 특히 엄중하여지는 것입니다. 아니, 복음의 빛을 받기가 바쁘게 신자가 된 한 가련한 조선 사람이 사도가 되어 얼마 안되는 동안에 수천 명의 동포를 입교시켰는데, 이 훌륭한 사업이 계속될 수가 없는 것이었다면, 천주께서 그것을 허락하셨겠읍니까. 신덕의 빛이 한 순간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이 그들을 그전보다도 더 캄캄한 암흑 속에 몰아 넣기 위한 것 뿐이었읍니까. 말하자면 자기의 힘으로 이루어져서 시초부터 용감한 순교자와 순결한 동정녀들을 그렇게도 많이 예수 그리스도께 바쳐 使徒時代(사도시대)에 가장 위대하고 가장 훌륭한 것을 바쳤던 것과 비길만한 일을 한 저 새로운 교회, 귀양살이와 종살이를 하고 재산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도 망나니들의 도끼날 밑에서 아직 복음을 전하고 신입교우의 수효를 끝없이 불려가는 용감한 증거자들을 아직도 수 많이 가지고 있는 저 교회, 그래 저 교회가 버림을 받아야 합니까. 아니, 지극히 인자하신 천주께서는 당신을 알자 마자 공경하고 사랑한 조선 사람들에게 대하여는 갑자기 엄하고 매정하게 되셨읍니까.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둘러싸여 그의 일꾼이 아무도 처들에게까지 다다를 수 없게 만들려 하시겠읍니까. 내 머리에 이와 같은 생각이 잠시나마 생겨난다면, 나는 섭리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5. 너무 많은 일을 하면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는 마지막 이유가 남아 있읍니다. 그러나 옛날 적언은 언제나 증명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도 하려니와, 이 격언을 이 경우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이 위에 말씀 드린 것으로 우리 회가 아직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또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고 믿습니다. 나도 여러번 들은 일이 있읍니다마는, 주교가 선교사 지원자들에게 대하여 가장 큰 호의를 보여 주는 교구에는 사제직을 지망하는 사람들의 수효가 늘 많다는 사실을 보아 왔읍니다. 버림 받은 교회를 지원하기 위하여 용감한 희생을 한 어떤 회에 이와 비슷한 은총이 내려지리라고 바랄 수는 없겠읍니다....
어떻든, 여러분이 십사숙고 한 뒤에 그래도 뒤로 미루는 것이 현명한 일이고 천주교의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신다면, 아주 간단한 계획을 하나 제안하겠읍니다.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기면 조선의 신입교우들에게는 대단히 유익할 수 밖에 없고, 또 우리가 현재 책임 지고 있는 포교지의 물질적 이익도 영신적 이익도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래에 대한 아무런 언질을 주지 말고, 우선 신부 1,2명을 보내겠다고 布敎聖省(포교성성)에 제외하십시오. 이들은 열심과 현명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모두 시험하여 보면 될 것입니다. 혹시 조선에 들어갈 수 가 있게 되면, 이들은 자기들 힘으로나 신입교우들의 도움으로 그들의 뒤를 따를 선교사들을 맞아들일 방법을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방법은 서양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곳에 이른 신부는 목자가 없기 때문에 영원히 소멸될 위험을 시시각각으로 당하고 있는 저 포교지를 지탱하여 나갈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섭리는 다른 구제착을 마련하실 것입니다. 만일 이 나라에 파견된 신부가 거기에 들어갈 수가 없다든지 사형을 당한다든지 하면 그 당자에게는 이익이 될 것이고, 그렇다고 다른 포교지에 대하여 크나큰 손해도 안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았다는 만족감을 가지게 될 것이고, 自責(자책)할 거리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위험한 사업을 맡을 신부가 누구이겠읍니까. 내가 하겠읍니다. 소조뽈리스 (Sozopolis) 주교님이 아무리 당신 교구에 선교사가 많이 있기를 원하신다 하더라도 불행한 조선 사람들을 위하여는 신부 한 사람은 기꺼이 내놓으실 것입니다. 주교님께 벌써 그 말씀을 드렸더니, 여러분께 편지를 보내라고 하셨읍니다. 주교님은 내 편지를 읽으셨고, 교황성하께서 내 청을 들어 주신다면 무엇이든지 하실 결심을 하고 계십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하여 로마에 글을 올렸다는 것을 숨기지 않으렵니다. 그러나 그 편지에는 여러분이 내린 듯싶은 결정에 대하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나 자신에 관할 일 만을 사뢰었을 뿐입니다.
지금의 나의 임무로 인하여 내 제의가 거부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교님은 교황 성하에게서 갑사 (Capsa) 명의 보좌주교를 선택하여도 좋다는 편지를 받으시고, 비록 나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나를 지목하신다는 뜻을 암시하여 주셨읍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말씀드린다하여도 주교님은 내 동의를 요구하실 것으로 짐작하지만, 보좌주교로 임명되는 것이 내 계획에 무슨 방해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교라고 하여 몸이 덜 튼튼하다거나 성직을 수행하는 데 덜 적합할 리도 없는 것이고, 오히려 좋은 일을 하기 위한 은총을 더 많이 받고, 더 광범한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멀리 떨어진 나라에 파견되는 선교사는 오랫동안 서양과의 연락이 끊어질지도 모르는데, 그가 보통 신부에 지나지 않는 경우에는 매우 곤난한 일을 당하는 일이 많을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교라면 열심한 신입교우들의 재질과 신심을 확인한 후에 그들을 사제품에 올려, 젊은 성직자들을 양성하기 위한 항구적인 시설을 세울만한 기회를 천주의 섭리가 내려 주실 때까지의 공간을 메울 수 가 있을 것입니다. 주교가 이 포교지에서 저 포교지로 전임되는 예는 드문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내 제안을 교황청에서 들어 주시도록 전력을 다하니 후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주교님은 내 뜻을 아시고 찬성하시며, 시간만 허락하면 직접 포교성성에 편지를 내겠다고 하십니다.
끝으로 성 빈첸시오·아·바오로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 글을 끝맺을까 합니다. "자아, 부인들이여, 여러분은 동정심과 박애심으로 이 어린이들을 아들 딸로 맞아들이게 되었읍니다. 이 어린이들을 낳은 어머니들이 이들을 버린 뒤로 여러분은 은총에 의한 이들의 어머니가 되었읍니다. 이제는 여러분도 어린이들을 버리기를 원하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어머니 노릇을 그만 두고 이들의 재판관이 되십시오. 이들의 운명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으니 여러분이 계속해서 자애롭게 보살펴 주시면 이들은 살 것이고, 그와 반대로 저버리시면 틀림없이 죽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북경교회가 저 열심하고 불쌍한 신입교우들을 버리지는 않았으면서 절대로 구원하여 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때부터 교황 성하께서는 우리 회더러 저들의 어머니와 의지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시니, 저들의 운명은 말하자면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 하겠읍니다. 여러분이 포교성성의 거기서부터 (??)의 넓은 지역에 신앙이 번져 나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선이 일본과 이웃하여 있고, 이 두 나라 사이에 행하여지는 교류라든지 풍속과 성격이 같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점으로 보아 조선 교우들이 불운한 일본 사람들과 북해도 기타 지방 사람들의 의지가 되고 새로운 사도가 될 희망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여러분이 이런 포교지를 포기하시면, 구원도 위로도 받지 못하는 저 불쌍한 신입교우들은 실망낙담하여 옛날 미신에 다시 빠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이렇게 되면 이 먼 나라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전파할 희망은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말것입니다.
교황파견선교사 브뤼기에르. 방콕에서 1829년 5월 19일 (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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