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12, 2009

이경언 바오로 옥중서간

어머니, 누님, 형님, 형수님 그리고 아내에게 드립니다. 집을 떠난 후 붙잡힐 때까지 13년 동안에 두 번 밖에는 가서 문안을 드리지 못했읍니다. 이것은 저로서 큰 불효입니다. 36년 동안 저는 크고 작은 허물 없이 지낸 날이 없었으며 효도의 본분을 어기기만 했는데, 오늘 뜻밖에도 천주께서 비상한 특은으로 죄악이 가득한 이 사람을 영생의 복락에로 부르십니다. 이것이 부끄럽고 가슴 떨리는 일이기는 합니다마는 그 분의 거룩하신 뜻에 순종 아니할 수가 있겠읍니까.
놓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기회입니다. 그래서 저는 천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읍니다. 그러나 겁이나는 것은 제 구원의 일로 보아 30여년이나 되는 세월을 허송한 것입니다. 그 나머지는 별로 무섭지않습니다. 지금도 저는 열심하지 않고 통회도 없고 완전한 애덕도 없읍니다. 그러나 오직 천주와 성모 마리아의 끝 없는 인자하심만을 믿고 있으니 저를 저버리실 수가 있겠읍니까. 천주께 그 분의 모든 은혜를 감사하여 주십시오.
누님, 어떻게 지내십니까. 나 같은 동생에게서 누님은 사실 아무런 우애의 표시도 얻어보지 못하셨지요. 이제는 누님과도 영 이별이군요. 이 세상에서는 다시 뵙지 못하게 되겠읍니다. 그러니까 덕을 닦고 공을 많이 세워서 천주 대전에서 영원히 같이 즐길 수 있도록 하십시오. 나는 이제 어머니께 대한 아들의 본분이나 누님께 대한 동생의 본분을 채울 길이 없겠으니, 우리 마음과 기도와 노력을 합하는 것만으로라도 영원한 복락 가운데에서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형님께는 무슨 말을 할까요. 형님 같이 착하고 덕이 많은 분이 쓸모 없는 동생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읍니까. 형님은 무엇보다도 구원을 먼저 생각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조약돌에서 튀기는 불꽂 같이 빨리 지나가는 이 세월을 긴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의 노후를 정성껏 보살펴 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니와 형제 자매 등 온 집안이 영원한 나라에서 한데 모여 우리의 공번된 아버지의 은혜를 찬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럽겠읍니까. 저와 같이 큰 죄인이요 악인에게도 천주께서 이렇듯 큰 특은을 내려 주시니 본성이 착하고 바른 형님께서야 조금만 힘을 쓰신다 해도 버림을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근실히 닦아 선종의 은총을 받으실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저는 형님께 걱정만 끼쳐 드렸으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제가 죽은 다음에 제 아내와 두 자식은 아무 의지할 데가 없게 되니 형님 말고 그 누구에게 그들을 부탁할 수 있겠읍니까. 지금도 짐이 무거우신 형님이 어찌 이 일을 감당하실 수 있겠읍니까. 참으로 딱해서 가슴이 스뭇 메어집니다.
형수님 안녕하십니까. 저를 길러 주시고 품에 늘 안아 주시고 지금까지 그렇게도 제 걱정을 해주시고 제 처지를 안타까와하시던 형수님이 이 편지를 읽으시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읍니까. 그러나 천주께 은혜를 감사하십시오. 그 한량 없으신 인내로 천주께서는 이 불쌍한 동생에게 십자가의 길로 예수를 먼 발치로라도 따라 갈 수 있는 은총을 주시려 하십니다. 순교하신 형님과 누님이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갈 행복을 얻어 주셨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천주께 감사를 드려 주십시오. 한가지 청을 드릴 것이 있는데 저의 이 마지막 청을 물리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 아들은 아무 짝에도 쓸데 없는 아이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 아이를 아주 양자로 삼아 가르치셔서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어 주십시오. 제 일생이 제게는 후회의 근원입니다. 형수님의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한 적이 너무나 많았고, 말씀을 너무나 안듣고 그 밖에도 말씀 드리지 못할 일이 무척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5남매 중 셋이 순교자입니다. 천주님으로부터 이 보다 더 큰 은총을 바랄 수 있겠읍니까. 다른 성인들과 형님과 누님에게는 이런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와같은 사람에게는 이 얼마나 큰 특은입니까!
그리고 아내여, 나를 용서하고 또 용서하여 주시오. 나와 같은 나쁜 남편은 다시 없으면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은 이루 글로 다 쓰지 못할 거요. 13년을 같이 사는 동안 나는 한시도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당신에게 근심 걱정만 끼졌을 뿐이오. 이제 갑자기 죽음을 마주 대하게 되니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리까. 이제 다시는 이 세상에서 같이 살지 못하게 되었소. 그러니 과거에 대한 약은 있을 수 없고 남느니 오직 회한 뿐이오. 비록 내가 남편의 본분을 잘 채우지는 못했어도 천국에 올라가는 은혜를 얻게 되면 당신에게 착히 살고 착히 죽는 은혜를 얻어 주기 위하여 전구하겠고, 또 나 자신이 천주께서 당신에게 내려주시기로 된 행복을 전하는 사자가 되어 당신에게 마주 와서 손을 이끌어 영복을 누리는 곳으로 인도하겠소.
간결히 부탁하니 모든 일에 천주 성은을 따르고 지난 모든 일을 뉘우치고 이 세상을 일장춘몽으로 알고 영원한 나라를 당신의 참 본향으로 여기시오. 아아, 나는 어떻게 이렇듯이 세상을 그리 중하게 여길 수가 았었던고. 며칠 후면 모든 것이 결말이 날 것 같소. 이제야 겨우 깨달았소마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모든 천주의 성은에 달렸고, 사람들이 계획하는 바는 허사에 지나지 않소. 그러나 뉘우침 조차 아무 소용에도 닿지 않는 짓이오.
어머님은 아직 이 세상에 계십니다마는 얼마나 더 사실는지요. 이 세상에 낳아 주신 어머님의 자식들이 하나씩 둘씩 순교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보고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진실한 통회를 발하도록 힘쓰시고 선종하는 은총을 받도록 하십시오. 형님과 누님이 최후에 남기신 말씀은 정성과 효성이 가득찬 것이었읍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여쭙더라도 그것을 익히 생각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형수님도 잊지 않겠읍니다. 잊지 않고 말고요. 제가 형제 자매 중에 누구에게 무관심할 수 있겠읐니까. 하지만 형수님이 저를 위해 당하신 수고와 들어 주신 시중은 어머님의 수고와 시중 다음으로 으뜸 가는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저도 어머님 다음으로는 형수님을 탁 믿고 의지하였었읍니다. 몇 해 전에 연풍에 갔을 적에는 형수님을 뵙지 못하고 돌아왔읍니다. 그것이 만 번 후회가 됩니다마는 이제 와서 어찌 하겠읍니까. 그러니 영원한 나라에서 다시 만나 뵙니다.
내 아들 딸아, 내가 주의 은혜로 너희들의 아버지가 되었다마는 내 죄가 중하기 때문에 본분을 타당히 지키지 못하게 되었고, 또 너희들이 철도 들기 전에 내 생명의 줄이 끊어지게 되는구나. 너희들에게 물려줄 덕도 없고 재산도 없으니 다만 몇 마디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자 한다. 천주의 성은을 충실히 따르고 어머니께 대해서 효도의 본분을 지키도록 하여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공손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라. 그래서 이 세상에서 착한 길을 따르면 분명히 천국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 나는 불쌍한 죄인이니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마는 그래도 나는 아버지니 아이들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격려하는 것이 내 본분이다. 또 옛 어른들의 이 지혜로운 격언을 마음 속에 깊이 새겨 주기를 부탁한다. 즉 비록 가벼운 잘못이라도 절대로 저지르지 말며, 또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선이라도 항상 힘써 행하라는 것이다. 다른 분들에 대하여도 쓸 말이 많으나 종이와 붓이 모자랄 뿐 아니라 또 다시 혹독한 고문을 당하여 아랫도리를 쓸 수가 없고, 20근도 더 되는 큰 칼을 쓰고 있어 정신이 얼떨떨하고 팔이 떨린다. 그래서 더 글 쓰기를 계속하지 못하겠다. 무엇보다도 특히 착하게 살고 착하게 죽기를 힘쓰기 바란다. 천만 번 부탁이다.
죄인 이경언 바오로

Friday, November 6, 2009

정하상 바오로의 상재상서


엎드려 아뢰옵건대 맹자가 양자와 묵자를 사설이라 하여 배척한 것은 그 사상이 유교학계를 해칠까 두려워 하였기 때문이요 한유가 석가와 노자를 쳐서 물리친 것은 그 사상이 일반을 미혹하여 혼란케 할까 했어였읍니다 옛 군자가 법을 세워 금령을 펼 때 반드시 그 뜻과 이치가 어떠하고 해됨이 있는가를 알아보았습니다 무릇 의리에 맞는 것이라면 비록 나무꾼 의 말이라도 성인이 반드시 받아드려 내 버리면 안 되는 말로 되어 있거늘 우리 나라의 천주성교를 금하시는 것은 그 뜻이 어디 있습니까


위선 그 뜻과 이치가 어떠한지 물어보지도 않고 몹시 원통스러운 말로 사교로 몰아 큰 법을 세워놓고 신유년(1801)을 전후 많은 인명을 없애면서도 한 사람도 그 기원과 전통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 이 도를 배우면 유교에 해를 끼치겠습니까 일반 백성을 혼란케 하겠습니까 이 도인 즉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사용하고 늘 실행해야 할 도이오니 해가 된다던가 혼란이 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감히 그 도리가 그릇되지 아니함을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천지 위에는 주재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만물이요 둘은 양심이요 셋은 성경입니다


만물은 무엇을 말함이겠습니까 집을 가지고 비유하건대 그 집에는 기둥과 지추돌이 있고 대들보와 서까래가 있고 문과 창이 있고 담과 벽이 있고 간막이와 시렁이 척도가 틀리지 않고 모나고 둥금이 다 각각 제도에 따라 된 것이어늘 만일 기둥과 지추돌과 서까래와 문과 창과 담과 벽이 서로 홀연히 합해지고 저절로 섰다고 말하면 반드시 미친 사람의 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제 생각컨데 천지는 커다란 집입니다 나는 것 뛰는 것 움직이는 것 심어 자라는 것 기기묘묘한 형상들이 어찌 저절로 생겨났겠습니까


만일 저절로 이루어 졌다면 해와 달과 별들이 어떻게 그 위치를 지켜 그르침이 없으며 봄여름 가을 겨울이 그 순서를 그르치지 않습니까 흥하고 망하고 번영하고 시들음을 지배하는 이가 누구이며 착한 자에게 복을 음난하 자에게 화를 주장하는 자 누구이겠습니까 높이 솟은 하늘이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데 모든 세상 사람이 죽어 무덤으로 가는 것을 자연으로 돌림은 이는 마치 유복자가 그 아비를 보지 못했다하여 그 아비라 있음을 믿지 아니함과 무엇이 다르리이까


세상사람들이 한편의 묘한 문장이나 한폭의 명화를 보면 흠모하고 찬탄하여 반드시 누구의 재주로 된 것인가를 물어 결코 평범히 무시하여 그저 보아 넘기지 않습니다 우주의 만물이 가지각색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한없이 많은 것도 역시 일종의 명작이요 명화인데 예로부터 이제까지 거의 없다시피 드물게 이것만은 그 작자를 묻지 아니하는 것이 웬 일이오니까 이 세상 사물이 질(質)과 모(貌)와 작(作)과 위(爲)의 넉자를 벗어나지 못하옵니다 질은 재료요 모는 상태요 작은 작자요 위는 이용함입니다 가까이는 우리 몸에서나 멀리는 모든 물건에서 그렇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이와같이 위대한 천지가 어찌 그 작자가 없겠습니까 만물을 보고 그 주재가 계심을 아는 것입니다


양심이라 함은 무엇을 말합니까 만일 밝은 낮이 캄캄해지고 우뢰와 번개가 서로 마주치면 어린아이라도 떨며 무서워하고 눈을 부릅뜨며 발이 무거워서 몸둘 곳이 없음을 압니다 이로써 선을 상주시고 악을 벌하시는 대주재께서 계심이 마음과 머리 속에 박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항간에 어리석은 남녀들이 만일 당황하고 막다른 지경이나 슬프고 원망스러운 때를 당하면 천주를 불러 부러지지나니 이것은 그 본연의 심정이요 타고 난 천성을 가릴 수 없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아도 알고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할 바를 몰라 두려워함이 모두의 상태입니다 이것은 양심을 통하여 상주께서 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합니까 옛적의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文) 무(武) 주(周) 공(孔)의 전기가 경서와 사기가 있어 나려 왔습니다 만일 경서와 사기가 아니었으면 요 순 우 탕 문 무 공이 어떠한 사상이나 어떠한 제도를 전하였는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상이나 제도가 대쪽에 새겨지고 책 속에 적혀 있음으로 예로부터 옳다고보아 금석같이 믿습니다 우리 성교의 전해옴도 경전을 통하여 된 것입니다 천지창조부터 역사가 끊임없이 기록되어 구약과 신약에 뚜렷하게 증명되고 오늘에 이르러 집집마다 입으로 외우고 소리로 노래합니다 소가 땀을 흘릴 만큼 실어다가 집에 채우더라도 해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글이 중국의 경서와 사기에 적지 않게 나타나 있다고 봅니다 중국의 경서 가운데 이런 말들이 들어있지 않습니까 역경에 "상제(上帝)께 바치나이다" 시경에 "상제께 아뢰나이다" 서경에 "상제께 제사하나이다" 하였고 공자는 "하늘에 죄를 얻으면 기도를 바칠 곳이 없나니라" 고 하였습니다 하늘을 공경하라 하늘을 두려워하라 하늘에 순종하라 하늘을 받들어라 하는 학설이 있어 여러 사람들의 여러 가지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서양의 사기가 오지 않았더라도 별 관계가 없었고 비록 왔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해 요(堯) 시대의 홍수와 진시왕 때 분서(焚書)로 사라져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손오(孫吳) 때에 이르러 적조년간(赤鳥年間)에 쇠 십자가가 발견되었고 당나라 정관(貞觀) 9년에는 경교(景敎)가 크게 떨쳐 조정의 저명한 인사로부터 시굴의 서민에 이르러 일제히 숭상하고 제사를 크게 지내고 경교비를 세우고 위성(魏徵) 방현령(房玄齡) 같은 대가들도 독실히 믿어 의심치 않았나이다 명나라 만력년간에 서양의 선비들이 들어와 저술한 서적들이 많이 있어 오늘에 이르러 중국에 전해 나려왔습니다 천주께서 동방을 이렇게 잠잠이 도우심으로 동방에 행복이 오고 우리도 이 행복에 참여함이 신기 하옵고 이미 50년이나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주재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가지 증거를 들어 주재(천주) 계심을 이미 밝히 알았으니 천주께서 천지만물을 만드심은 우리에게 그 복을 보내주시고 그 나타내시려고 하심을 마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늘을 만드사 우리를 덮으시고 땅을 만드사 우리를 실으시고 해와 달과 별을 만드사 우리를 비추시고 초목과 금수와 금은동철은 우리가 누리고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모태에서 나서부터 장성할 때까지 가지가지 큰 은혜가 이와같이 한이 없은 즉 인간의 본분은 마땅히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만일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입고 먹기만 하면 인류를 내신 큰 은혜를 저버림이 이보다 더 클 수 없습니다 비유하여 아버지가 집을 짓고 살림을 마련하여 아들에게 주어 쓰게 하였는데 그 아들이 그 집에 살며 살림을 쓰면서 제가 잘난체하며 부모를 섬기는 도리와 근본을 갚는 뜻을 모르면 이것이 효도입니까 아니면 불효입니까


사람이 이 세상에 삶이 그 터럭 끝 만한 것이라도 모두 천주의 힘입니다 내시고 기르시고 도우시고 돌아보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죽은 후 받은 상을 구태여 말할 것 없이 당장 받고 있는 은혜가 이미 극도에 이르러 비할데가 없으니 우리가 일신을 다하여 그를 받들어 섬긴들 그 만분의 일을 보답한다 하겠습니까 받들어 섬기는 길은 고상하여 실행이 어려운 일도 아니요 은밀한 일을 들추며 기괴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요 잘못을 고치고 스스로 새로워져 천주의 계명을 지킬 따름입니다


계명이란 천주께서 계시로서 가르쳐 주신 열가지 계명입니다 1은 하나이신 천주를 만유 위에 흠숭하고 2는 천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불러 거짓 맹서를 하지 말고 3은 첨례날(주일)을 지키고 4는 부모를 효도하여 공경하고 5는 살인하지 말고 6은 사음을 행치 말고 7은 도둑질을 하지 말고 8은 망년된 증참을 말고 9는 남의 아내를 원치 말고 10은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 열가지 계명을 종합하면 두가지로 돌아가니 즉 천주를 만유 위에 사랑하고 남을 자기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위 세가지 계명은 천주를 흠숭하여 섬기는 절차요 아래 일곱가지는 자기를 닦고 성찰하는 공부입니다 안씨(顔氏)의 네가지 말라는 것이나 대기(戴記)의 아홉가지 생각이 이에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충성과 관서와 효도와 우애와 인애와 의리와 예의와 지혜가 이 안에 들어 있어 터럭만치도 부족된데가 없습니다 이 도를 한 집안에서 실행하면 집안이 정돈될 것이요 한나라에서 실천하면 나라가 다스려질 것이요 온 천하가 실행하면 온 천하가 태평할 것입니다


열가지 계명 가운데 한 가지라도 범할 수 없으며 몸으로 범하기뿐만 아니라 더욱 마음으로 범함을 급합니다 무릇 사람의 잘못은 그 마음속에서 일어나서 그 행동을 그르칩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법은 그 행동을 다스릴 수 있으나 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천주의 계명은 행동만 다스릴 뿐 아니라 마음까지 다스립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위태롭고 도를 구하느 마음이 미약하여 자칫하면 죄를 범합니다 사욕과 편정이 백방으로 유인하여 교만으로 꾀이고 분노로 꾀이고 탐도로 꾀이고 사음으로 꾀이고 질투로 꾀이고 해태로 꾀여 사람을 사지에 몰아 넣습니다 시시로 경계하여 물리치니 아니하고 또 그때그때 공격하지 아니하면 함정에 빠짐을 면치 못합니다 죽을 때까지 싸우고 싸움이 계속할 때 싸와 이기면 공이 되고 이기지 못하면 죄가 됩니다 공과 죄의 판결은 육신이 죽는 날에 있습니다 천주께서는 지극히 공의로우사 선을 아니 갚으심이 없고 천주께서는 지극히 공의로우사 악을 아니 벌하심이 없습니다 만일 육신이 죽은 후에 영혼까지 없어진다면 상이나 죄를 어디다가 베푸시겠습니까 그래서 영혼이 죽지 않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무릇 혼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생혼이요 둘째는 각혼이요 셋째는 영혼입니다 생혼은 초목의 혼으로 나서 자랄 수 있으나 앎과 깨다름이 없고 각혼은 금수의 혼으로서 앎과 깨다름이 있으되 뜻과 이치도 모르고 옳고 그른 것도 모릅니다 영혼은 사람의 혼으로서 능이 나서 자라서 알고 깨다를 수 있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고 도리를 추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만물 중에 가장 높습니다 사람이 높다고 하는 것은 그 혼이 신령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천명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모태에서부터 타고 난 것입니다 어찌 초목이나 금수처럼 더부러 썩어 없어지겠습니까 예전에 유학자들도 혼이 세가지가 있고 영혼이 없어지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3혼이 여러번 흩어진다 또는 혼이 올라가고 혼이 나려간다 하고 그 혼이 셋이 있고 영혼이 죽지 아니함이 분명합니다 이미 죽지도 아니하고 없어지지도 아니하면 어디를 가야 하겠습니까 선자의 영혼은 천당에 올라 상을 받고 악자의 영혼은 지옥에 나려 벌을 받습니다 상은 천당의 영원한 복락이요 벌은 지옥의 영원한 고통입니다 만일 천당을 보지 않고 지옥을 보지 아니 하였다 해서 천당 지옥이 있음을 믿지 아니하면 이는 눈먼 사람이 하늘을 보지 아니하였다 해서 하늘에 해가 있음을 믿지 아니함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일이 이치에 합하면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고 이치에 합하지 아니하면 보일지라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을 믿을 수 있고 믿을 수 없음이 보고 못보는데 매이지 아니하고 다만 이치에 합함과 이치에 합하지 아니함에 있을 따름입니다 이치에 합한다면 천년 후에 올 일이라도 가만히 않아서 알아낼 수가 있으니 하필 내가 몸소 보아야 하겠습니까


국가에도 상과 벌이 반드시 있습니다 공로가 있는 자는 조정에 불려 올려 벼슬과 녹을 받게 하고 황금과 비단을 주고 죄가 있는 자는 쫓아내어 옥에 가두고 사형에 처합니다 한 국가의 입금에게도 상벌의 권한이 있거늘 하물며 천지의 대군에게랴 그 상은 이 세상의 벼슬과 녹에 비할 바가 아니요 영원히 끝없는 고통입니다 천당에 오르고 지옥에 나리는 결정이 한번 이루어지면 다시는 변경할 도리가 없습니다

오 세상 사람들이 영혼이 죽지 아니함을 밝히 알면서도 어디 있는 줄을 모르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이미 영원한 상과 영원한 벌이 있은즉 세상일이 헛된 환상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길어야 백년을 넘지 못하면서도 이로운 것만 탐하는 마당에서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고 애를 쓰고 이미 얻은 것은 잃을까봐 걱정하는새 어느덧 늙음이 닥아온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몸이 한번 죽으면 부귀공명이 필경 허무로 돌아가고 맙니다 하물며 부귀공명은 한 평생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이어늘 이 티끌같은 꿈에서 깨나기가 어찌 그리 어렵습니까


오 이 세상의 복은 어그러져 완전치 못하고 천상의 복은 완전하여 어그러짐이 없습니다 이 세상 복은 잠시 뿐이요 천당의 복은 영원하여 잠시 뿐이 아닙니다 어그러지고 잠시 뿐인 이 세상 복을 얻고자 함은 완전하고 영원한 천당의 복을 얻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비록 천당의 영복을 얻지 못할지라도 지옥의 후환만 없다면 세상의 잠시 영화를 도모하여도 좋겠지만 이 지옥의 영원한 벌을 어찌하겠습니까 이 세상에 있을 때 정신을 차리지 못해 깨닫지 못하다가 육신이 죽은 뒤에야 뉘우친들 이미 늦었습니다 이러므로 목을끊을 큰 도끼가 앞에 있고 몸을 삶을 큰솥이 뒤에 있더라도 꿋꿋하게 굽히지 아니하는 자가 대대로 적지 않습니다 이것도 진정한 교의 한 증거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해 말하면 지극히 거룩하고 지극히 공번되고 지극히 바르고 지극히 참되고 지극히 뛰어나고 오직 하나요 둘이 없는 교입니다


어찌하야 지극히 거룩한 교라 하는고 하면 천주께서 친히 세우셨고 예로부터 성인들이 대대로 뒤를 이어 그 옳음을 탄명하였고 그 규칙을 정하여 생명을 바쳐서 증명하기까지 이르렀으니 지극히 거룩하다 이를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지극히 공번되다 이르는고 하니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학식이 있거나 없거나 늙고 젊음을 막논하고 세계의 모든 사람이 다같이 봉행하여야 할 도이오니 지극히 공번되다고 이를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지극히 바르다 이르는고 하니 광대명백하고 크고 평평하여 터럭만치도 치우친 행위나 바른 것을 도루시키는 일이 없으니 지극히 바르다고 이를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지극히 참되다 하는고 하니 천하에 교가 없는 나라가 있는 적이 없으되 그 교가 참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노자나 장자는 허무사상에서 참됨을 잃었고 선도와 불교는 환상과 망상에서 참됨을 잃었고 이밖에 군소 사상과 미신과 방술은 입으로 논할 가치도 없으나 성교의 도리는 진실하여 거짓이 없어 영원히 그르치지 아니하니 지극히 참되다 이를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지극히 완전하다 하는고 하니 초목으로 비유하면 이단교들은 어떤 것은 줄기가 있어도 가지가 없고 어떤 것은 잎이 있어도 꽃이 없고 어떤 것은 꽃은 있어도 열매가 없어 지작과 결말이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접속될 수도 없으되 성교는 줄기가 있고 가지가 있고 잎이 있고 꽃이 있고 열매가 있어 천지와 천신과 마귀와 인류의 내력과 과거 현재 미래의 질서가 가지가지로 다 갖추어 있으니 지극히 완전하다고 이를 수 있습니다


슬프다 금과 옥을 가르켜 억지로 기와라 자갈이라 하고 먹어서 이로운 것을 가지고 억지로 못먹는 것이라 하니 이 일을 장차 어찌할고 또 말하기를 부모를 멸시하고 임금을 업신여긴다 하니 이는 성교의 주요한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십계의 제4계명이 부모를 효도로 공경하라 하였습니다 충과 효의 두 글자는 만대에 변할 수 없는 도리입니다 부모의 뜻을 받들고 그 육신을 봉양함은 사람의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로되 성교를 봉행하는 사람은 더욱 절실히 삼가고 조심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섬김에 그 예를 다하고 봉양함에 그 힘을 다합니다 충성을 임금님께 옮겨 자기 몸으로 하여금 생명을 없애 끊는 물 속에 드러가고 타는 불을 밟기도 하여 감히 회피하지 아니 하나이다 이대로 아니하면 계명의 가르침을 어기는 것이 되오니 이래도 과연 부모를 멸시하고 임금을 업신여기는 학설입니까


다만 나라의 임금이 금하는 데도 백성이 실행하는 자 있고 집안 아비가 금하는 데도 자식이 실행하는 자가 있어 이것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까 이것도 역시 말은 되오나 지위에는 높고 낮음이 있고 일에는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으니 집안의 아비가 가장 중하나 한 집안의 아비보다 높은 이는 나라의 임금이요 한 나라 안에서 임금이 가장 중하나 나라의 임금보다 더 높은 이는 천지의 큰 임금이십니다

집안의 아비의 명을 듣고 나라 임금의 명령을 듣지 나니 하면 그 죄가 무겁습니다 나라 임금의 명령을 듣고 천지 대군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면 그 죄는 더욱 커 비할 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주를 받들어 섬김이 임금의 명령을 일부러 어기려는 것이 아니오 부득이 한데서 오는 것인데 이것을 들어 부모와 임금을 업신여긴다 함이 옳은 말이 오니까


또 말하기를 재물과 여자를 서로 융통한다 합니다 재물의 융통은 예로부터 국가를 다스리고 집안을 다스리는 사람에게는 하루라도 없어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서로 융통해야만 백성을 서로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만일 재물을 융통하고 법이 없으면 온 나라 안에서 살아나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바로 이것을 좋지 못한 법이라 하여 도로혀 금해야 될 일입니까

여자를 서로 융통한다고 하는 것으로 말하면 금수도 그렇지 아니한 것이 있거늘 하물며 그것을 성교에 돌리려 합니까 십계의 여섯째에 간음을 행하지 말라 하였고 아홉째에 남의 아내를 원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섯째 계명은 몸으로 범함이요 아홉째 계명은 마음으로 범함입니다 성교에서 간음을 엄격하게 금함이 이와 같이 거듭 겹쳐 있는데도 여자를 융통한다는 말을 퍼뜨리니 어찌 이와 같이 윤리를 거스리고 떳떳한 질서를 어지러이 하는 교가 있겠습니까


교리의 참되고 거짓됨과 사리의 바르고 그름은 한쪽으로 밀어 놓고 얼토당토아니한 말을 가지고 공격하고 배척하니 외국의 교라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까 금은 산지를 가리지 않고 오직 순금이면 보배가 되듯이 교가 어디서 왔건 그 거룩함이 참되면 그 교의 전래함에 어찌 이 나라 저 나라의 경계가 있겠습니까

중국으로 말하면 각국 사람들이 왕래하며 서로 교제합니다 불교의 스라마나의 숭상도 버려둡니다 외국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사나 일찍이 금할 줄을 몰랐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불교의 해 끼침이 오래 되었습니다 전국에 있는 사찰의 건축은 가장 사치를 다한 것이요 금부처와 동불상들은 재산을 낭비한 것입니다 저 불교는 인도의 이단입니다 성교의 글을 훔쳤고 성교의 규칙을 본떴으나 옳은 도리를 그르쳤고 윤리가 끊어졌고 기강이 뒤집혔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붉은 빛깔을 망치는 자줏물이요 못자리를 망치는 가라지입니다 길흉화복의 설을 퍼뜨려 무식한 사람들을 공갈함이 이제 이르러 괴상한 폐풍이 되었습니다


무당 풍수 점장이 상장이와 같은 사람들까지도 부녀와 아이들을 홀리고 혹하게 하여 돈과 재물을 살살 낚아감을 예사로 보아 넘기면서 홀로 성교만이 포섭의 은전을 받지 못함은 어찌된 일입니까


가정에 해를 끼쳤습니까 나라에 해를 끼쳤습니까 그 하는 일을 보고 그 행실을 살피면 그 인간이 어떠함을 알수 있고 그 가르침이 어떠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일찍이 역적질을 하였습니까 도둑질을 하였습니까 일직이 간음을 하였습니까 살인을 하였습니까


또 법에도 없는 형벌을 해서 천주를 배반케 하고 더러운 폭설로 모독하는 사실이 허다합니다 대저 천주는 만물을 만드신 큰 부모시오 만물을 다스리시는 큰 주재십니다 옛 성현들은 일이 생겼을 때 우러러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의 사람들은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해마다 계속 흉년을 당하고 있습니까 백성과 나라가 곤궁에 빠진 이때 바라건대 우리의 어지신 임금께서는 밤에도 옷을 벗지 마시고 해뜰 무릅 진지를 잡수실 만큼 부지런히 정사를 돌보시사 어지심을 베푸시고 살리기를 좋아하시는 덕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흡족케 하시옵소서 아 저 성교를 믿는 사람들만이 홀로 우리 임금님의 백성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이 인간들이 어찌하여 극도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아낌이 없는고


옥안에서는 지쳐서 죽고 문밖에서는 목이 잘려 죽음이 연달아 끊이지 아니하여 피눈물이 도랑을 이루고 통곡하는 소리 하늘을 찌르고 아비는 자식을 부르고 형이 아우를 부르고 궁지에 몰려 몸을 돌이킬데가 없는 것 같이 되었으니 이게 무슨 꼴입니까 대저 목숨을 덜고 생명을 바쳐서 천주의 참된 교의 증거가 되고 천주의 영광을 들어냄은 우리들의 분수에 잇는 일입니다 이 몸도 장차 죽을 목숨입니다 이렇게 감히 말할 때를 만나 한번 머리를 들고 길게 외치지 못하고 슬프게 입을 다물고 죽는다면 산처럼 쌓인 이 하회를 장차 백대의 후세에 폭로할 수 없겠습니다


엎드려 빌건대 바로 이때에 밝히 비추어 굽어 보시와 도리가 참된지 거짓인지 그릇 된지 올바른지 자세히 판단한 다음 위로는 나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일변하여 도의로 돌아와 금령을 늦추어 체포하는 법을 거두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내놓고 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제 자리에 돌아가 제 업을 즐기면 한가지로 평화를 누리게 하시기를 천만번 바라옵니다


또 한 말씀드립니다

죽은 사람 앞에 술과 음식을 차려놓는 것은 천주교에서 금하는 바입니다 살아 있을 동안에도 영혼은 술과 밥을 받아먹을 수 없거늘 하물며 죽은 뒤에 영혼이 어찌 하겠습니까 먹고 마시는 것은 육신의 입에 공급하는 것이요 영혼의 양식은 진리와 덕행입니다 아무리 지극한 효자라 해도 맛좋은 것이라 해서 잠들어 있는 부모앞에 차려드릴 수 없는 것은 잠들었을 동안은 먹고 마시는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잠시 잠들었을 때도 그렇거든 하물며 영원히 잠들어 버렸을 때는 어떻하겠습니까 쌀과 수수와 기장과 피와 향기로운 과일로 된 젯상을 차려 놓음이 헛된 일이 아니면 거짓된 일입니다 사람의 자식이 되어 헛되고 거짓된 예로 어찌 이미 죽은 어버이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양반 집의 신주라고 하는 것도 천주교에서는 금하는 것입니다 이미 정신의 기백과 육체의 골격이 서로 연결된 것이 없고 또 낳아서 길러준 노고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비라 어미라 함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데 목수가 만든 것이요 분을 칠하고 먹을 찍은 것을 가지고 참 아비와 참 어미라 부릅니까 바른 이치에 근거가 없고 양심이 허락지 아니합니다 차라리 양반에게 죄를 지을지언정 천주교에 죄를 얻고 싶지 않습니다

[출처] 상재상서 |작성자 로사리오

Thursday, November 5, 2009

최양업 신부 7번째 서간



지극히 공경하올 르그레즈와 신부님께

드디어 그렇게도 오랫동안 소망하던 때가 왔습니다. 저의 가련한 조국에서 그다지도 보고 싶었던 저의 형제들에 대해 사랑하올 신부님들께 서한을 드릴 수 있는 때가 마침내 왔습니다.
...

저는 험악한 길을 계속하여 개척해 나가면서 조선의 철통같이 굳게 닫힌 관문을 뚫고 통과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관문 경비 초소의 경계망을 들키지 않게 피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모든 기대와 희망을 하느님의 자비하신 전능에 의탁할 뿐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에 의지하고 체포될 각오를 단단히 하고서 밤중에 관문 경비 초소에 다가갔습니다. 압록강 강변을 지키는 경비병들은 성벽 위와 읍내로 들어가는 성문에서 경비하고 있는 것이 일상 임무였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은 칠흑같이 캄캄한 밤이었고, 게다가 광풍이 참으로 거세게 불었으며, 혹독한 추위에 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그 때문에 경비병들이 집안에 꼼짝 않고 갇혀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관문 한복판을 지나왔는데도 아무도 우리를 눈치채거나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위험을 모면하고 나서는 별로 큰 어려움 없이 서울까지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 하루를 묵고 나서, 그때 충청도에 머물고 계시던 (페레올) 주교님을 뵈러 길을 계속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중병을 앓고 계시는 다블뤼 신부님께 가서 종부 성사를 집전해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주교님께로 가서 보니 주교님도 열병을 앓고 계셨습니다.

저는 하루 동안 주교님과 담화를 나눈 후, 잠시도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곧바로 전라도에서부터 공소 순회를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의 보호를 받아 저는 6개월 동안 5개의 도를 무사히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두 군데에서만 약간의 위험을 겼었습니다.

한 곳에서는 어떤 작은 마을에 여교우 3명만이 있었는데, 외교인인 부모들과 남편들과 함께 역시 외교인들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방문하려고 미사 가방을 챙겨 가지고 복사를 데리고 저녁 무렵에 아주 초라한 집에 가서 머물렀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제가 그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서양 사람인 줄로 의심하여 즉시 마을 이장에게 달려가 알렸습니다. 마을 이장이 그날 밤 안에 저를 잡아죽일 의논을 하자고 그 마을의 모든 연장자들을 소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저들의 손아귀에 들어 있었고, 도망칠 수도 없었습니다. 온 마을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으므로 우리가 도망을 친다면, 우리에게 대해서뿐 아니라 우리가 들었던 집에 대해서도 마을 사람들의 성을 돋우어 광분하게 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보호 아래로 달려들고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온전히 맡겼습니다. 외교인들의 고함소리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 체하면서 밤새도록 저들이 쳐들어오기만 대비하고, 그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의견이 서로 엇갈려 우리가 아침에 그 마을을 떠나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그 세 여교우들을 보러 갈 수가 없었고, 이 때문에 의기소침한 그들을 외로움 속에 버려두고 떠나 왔습니다.

또 한 곳은 거의 2백 명이나 되는 신자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공소 사목을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마을 이장에게 제가 여기 있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그 이장은 자기 마을에 서양 사람이 와 있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떠벌리면서 마침 바로 그 시각에 제가 고해성사를 집전하고 있는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는 저에게 점심때부터 밤중까지 욕설과 저주와 협박과 공갈을 퍼부었습니다. 그는 제가 아주 고약한 서양놈이요, 프랑스놈이라고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너는 큰 도둑놈이다. 너는 우리한테서 도둑질을 하려고 프랑스에서 온 놈인지? 너희 서양놈들은 사기꾼들이요 프랑스놈들은 선동꾼들이다. 우리를 이렇게 소란스럽게 하고 속이는 것이 너희에게 무슨 이득이 되느냐? 네가 어디 견딜 수 있나 보자. 너는 내일 붉은 오랏줄에 꽁꽁 묶여 도둑놈들의 감옥으로 끌려갈 것이다” 등등. 이렇게 그들은 계속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마침내는 제풀에 지쳐서 잠을 자러 갔습니다.

저는 공소 회장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한밤중에 일어나서 날이 새기 전에 그곳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 전날에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 준비를 한 이들이 미사를 간절히 기대하였는데도 저는 미사도 못 드리고 도망쳤습니다. 성사를 받지 못한 다른 신자들은 다음날 저를 뒤쫓아 백 리나 되는 험준한 길에도 불구하고 다른 교우촌까지 와서 성사를 받았습니다. 마을에서 나올 수 없었던 그 밖의 신자들은 실망과 한숨 속에 그냥 내버려졌습니다.

저는 교우촌을 두루 순회하는 중에 지독한 가난에 찌든 사람들의 비참하고 궁핍한 처지를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저들을 도와줄 능력이 도무지 없는 저의 초라한 꼴을 보고 한없이 가슴이 미어집니다. 저들은 포악한 조정의 모진 학정 아래 온갖 종류의 가렴주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얽히고 설켜서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비참한 곤경에 빠져도 손가락 하나 옴짝달싹할 수 있는 자유조차 없습니다.

동포들로부터 오는 박해, 부모들로부터 오는 박해, 배우자들로부터 오는 박해뿐 아니라, 친척들과 이웃들로부터도 박해를 받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험준한 산 속으로 들어가 이루 형언할 수 없이 초라한 움막을 짓고 2년이나 3년 동안만이라도 마음놓고 편안히 살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처럼 고난에 찬 예를 한두 가지 들어 드리겠습니다. 어떤 양반 집 출신의 처녀가 열 다섯 살 때에 천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처녀는 천주교를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자기 아버지 집에서는 종교를 실천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집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녀는 교우들을 찾으러 가던 도중에 길에서 어떤 외교인 남자에게 납치를 당하여 억지로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 납치자의 집에서 12년 동안 살았으나, 자기 부모한테도 어느 교우한테도 아무런 소식도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다시 도망할 궁리를 하고 있었으나, 어디로 도망가야 피신처를 찾아낼지 몰랐고, 또 혹시 도망치다가 다른 납치자의 손에 떨어질 위험도 있었습니다. 우 연히 교우 하나가 어떤 외교인 친구로부터 이 여인에 관하여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의 친척으로 가장하여 그 여자를 찾아가서 여러 가지로 위해 주고 천주교 교리와 기도문을 배우라고 책 몇 권을 구해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에게 성사를 받게 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저는 또 양반 집안 출신인 안나라는 여교우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여자는 19년 동안 철저한 외교인 집안에만 갇혀 지내면서 신자들과 연락을 하지 못했고, 따라서 성사를 받지 못한 채로 지냈습니다. 바로 올해에 그 여인은 친척 되는 어떤 신자에게 소식을 전할 수가 있어서, 이 신자가 안나를 찾아가서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안나가 사는 집에서 50리 떨어진 공소집에 있었습니다. 그 신자가 저를 찾아와서 안나가 얼마나 열심하고, 또 얼마나 간절하게 저를 기다리며, 또 철저한 외교인 집안에서 얼마나 처량한 처지에 있는지를 얘기해 주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온갖 미신을 숭상하는 곳에서, 혼자서도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신자의 본분을 조금도 궐한 적이 없었답니다. 잠시도 끊임없이 줄곧 성사 받기를 간절히 원하며 자기에게 사제 한 사람을 보내 주시기를 하느님께 줄기차게 애원하며 기도하였답니다.

안나는 외로움을 스스로 달래느라고 가끔 유럽에서 생산한 포목의 자그마한 천 조각을 집어들고 들여다보면서 유럽과 선교사 신부님들을 생각하곤 하였답니다. “그 물건이 유럽에서 운반되어 온 것이니만큼 머지않아 선교사 신부님들도 유럽에서 다시 올 것인 즉, 언젠가는 신부님들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위로했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그냥 참고 지낼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이 충실한 여교우에게 가까이 가서 그에게 성사를 전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나, 저는 온전히 하느님의 자비에 의지하고 안나의 진심을 신뢰하였습니다. 지극히 착하신 하느님과 동정 마리아께서 마침내 그토록 간절한 안나의 애원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처럼 충실한 당신의 여종에게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집전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제게 알려주시리라고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유일한 위로인 성체를 모시고 저에게 안나의 얘기를 들려준 그 신자를 데리고 허둥지둥 서둘러 황급히 안나가 사는 마을로 달려갔습니다.그 마을 전체가 외교인들이었고, 그 집안 식구들도 모두 외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런 즉 고해소를 꾸밀 곳도 마땅치 않았고, 성체를 안치할 찬먹을 설치할 만한 마땅한 장소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저는 마치 길가다가 피곤하여 노독을 풀고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잠깐 쉬는 것처럼 강가의 나무 그늘에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는 한편 제가 그 여인을 상면할 만한 장소를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저와 동행하여 온 그 신자를 정탐으로 보냈습니다. 그 신자가 안나의 집에 들어가 보니 그 집 남자들은 모두 밭에 나가서 집 안에는 어른이 아무도 없고 안나만이 홀로 자기 딸과 어린아이 몇 명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 신자는 그 열심한 여교우가 성찰한 것을 적은 쪽지를 저에게 가져왔습니다. 저는 앉은자리에서 그것을 읽고 즉시 안나의 집으로 들어가, 안나를 바깥 사랑방으로 불러내 재빨리 사죄경을 염해 주고 성체를 영해 준 다음 곧바로 도망치다시피 나왔습니다. 그때 저는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최상의 감사를 드리면서 빠져 나왔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는 거룩한 우리 종교를 실천할 자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사방에 궁핍 투성이요 사방에 투쟁뿐입니다. 우리는 마치 지극히 큰 죄나 저지르는 듯이 항상 전전긍긍 떨고 있으며, 사람들은 공연히 우리를 미워하고 마치 우리를 흉악범들처럼 멸시합니다.

만일 누가 신앙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즉시 온 가족과 친척들과 이웃 사람들이 벌떼같이 들고일어나 그를 공격하고, 그를 인간 중에서 가장 부도덕한 자로 여겨 저주를 합니다. 온갖 방법으로 못살게 괴롭힙니다. 결국은 그를 멀리 쫓아내고 다시는 자기 동족들 가운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합니다.

특히 양반들은 그들 중에 누가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 사람을 더욱 격렬하게 핍박합니다. 가족 중의 어떤 이가 천주교 신자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그의 가문 전체가 불명예로 낙인이 찍히고, 그 집안의 모든 영광과 모든 희망이 걸려 있는 양반의 칭호를 박탈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많은 신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크나큰 악표가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회가 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치욕 속에서 그들의 영광을 찾기보다는 그들의 헛된 칭호를 누리기를 더 원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떤 품계에 오르게 되면 악표의 바위가 더욱 단단해집니다. 어 떤 신입 교우가 최근에 친구들의 영향력으로 5품 관직에 올랐는데, 그로서는 이 승진을 위해 손을 쓴 일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본인은 아무런 공로도 없고 한 번도 청하지 않았는데, 순전히 친척이나 친지들의 영향력만으로 관직을 얻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관직이 어떤 경로로 내려졌든지 간에, 반드시 수락해야 합니다. 만일 (임금님이 내린 관직을) 사양했다가는 철저하게 망신을 당하거나 죽음까지 당하는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 신입 교우는 신앙을 잃어버릴 크나큰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 사람은 어떤 도나 큰 도시의 관장으로 발령이 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 관장의 직책을 받아들이면, 미신적인 의식에 자주 참여하지 않고서는 그 직분을 수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 만일 그 관직을 수락하지 아니하면 반역자로 몰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자신은 죽을 위험에서 처하게 되고 그의 온 가족은 극도록 큰 환난에 휘말릴 위험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양반 집의 부녀자들의 처지는 더욱 비참합니다. 여자들은 자기 집 문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합니다. 여자들은 아주 가까운 자기 친척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마주 보아서는 안됩니다. 알지 못하는 낯선 남자에게 단 한 번만이라도 얼굴을 보이게 되면 큰 죄악으로 돌립니다.

과부가 되면 비록 혼인한 지 단 하루만에 남편을 잃었다 하더라도 본인이 원하든 말든 상관없이 반드시 수절을 해야 합니다. 만일 재혼하려고 하면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그녀의 불명예로 말미암아 온 가문도 망신도 됩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항상 밤에 성사를 받으러 옵니다. 이렇게 여자들이 밤길을 다니는 모험을 하는 주에 얼마나 많은 비극을 당할 위험이 있는지 모릅니다. 한 번은 두 여인이 공소 순회라는 사제한테 가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들은 길을 잘 모르는데 마침 공교롭게도 그날 밤은 칠흑 같이 캄캄한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그들이 집을 떠난 지 조금 후에 그만 길을 잃어버려 밤새도록 길 아닌 험한 곳을 헤맸습니다. 이렇게 암흑 속에서 방황하는 동안에 폭포 같은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몸이 흠뻑 젖어 춥고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앞으로 걸어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시어머니와 며느리인 두 여인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언 몸을 서로 꼭 껴안음으로써 체온을 간신히 유지하였습니다

그 두 여인은 새벽녘이 되자 간신히 길을 찾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 집에서 불과 10리밖에 안돼는 곳에서 이런 고생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라도 성사를 받을 수 있기만 하면 그래도 다행으로 여깁니다.

외교인 부모나 남편의 슬하에 매여 있는 여교우들은 대개가 성사를 받으러 올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성사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애만 태웁니다. 어느 때가 되어야 저렇게도 천상 음식에 굶주린 영혼들을 실컷 배불리 포식시킬 수 있겠습니까?

단 한번이라도 사제의 얼굴을 보는 것이 큰 은총입니다. 더 자주 그러한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이틀이나 사흘의 길을 걷는 것쯤은 오히려 가깝게 여깁니다. 우리는 신자들이 사제를 보기 위해서나 미사 성제에 참여하기 위해 떼를 지어 한꺼번에 급히 몰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항상 매우 엄격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명령을 위반하는 신자들에게 아무리 벌을 내려도 신자들은 이 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신자들이 막무가내로 순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교우촌에 도착하면, 어른이고 아이고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모두 새 옷을 갈아입고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그리고 사제가 그들의 인사를 받는 것을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그들은 조금도 참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합니다. 그들은 공소 회장들을 연방 들여보내 어서 인사를 올리고 사제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졸라댑니다.
...
조선 백성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결혼하여 아들을 낳지 아니하는) 동정 생활을 불효로 매도합니다. 모든 이가 정결을 지키는 삶을 순전히 기만하는 위선에 불과한 것으로 야유합니다. 신자들을 반역도당으로 여겨 누구든지 마음대로 핍박할 수 있고, 가장 천한 백성까지도 천주교 신자를 마구 박해합니다.

신심 깊은 열심한 여인이라도 결혼하지 아니하고 남편이 없으면 외교인들에게 납치되어 갈 위험이 있고, 따라서 그들의 영원한 구원을 위태롭게 할 염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동정 생활을 찬양하는 설교자인 우리 사제들이 오히려 어쩔 수 없이 결혼을 권유하거나 강제로 명령하는 자가 되어야 할 지경입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을 더 잘 설명할 만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바르바라라는 처녀가 있었는데, 오빠가 8명이 있는 막내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오빠는 다 죽고 오빠 둘만 남았습니다. 바르바라는 7세에 책을 읽을 줄 알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동정을 지키기로 작정하였습니다.

하루는 올케가 옷 한 벌을 지으면서 바르바라에게 말했습니다. “이 옷은 아가씨 옷입니다. 아가씨 혼인날에 입으실 거예요” 이 말을 들은 바르바라는 즉시 집안의 가장 으슥한 곳으로 피해 가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달래면서 앞으로 너를 절대로 시집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다음에야 간신히 바르바라를 달랠 수 있었습니다.

바르바라는 열한 살 되던 해 어느 날 자기 방벽에 글 몇 줄을 써놓고 나서 책 2권과 얼마의 쌀을 싸가지고 몰래 빠져나가 같은 나이 또래의 소녀 한 명과 함께 밤중에 깊은 산 속으로 도망갔습니다. 아침이 되어 부모들이 깨어나 보니 바르바라가 보이지 않자 찾던 중에 벽에 바르바라가 직접 손으로 써 붙인 쪽지를 발견하였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사랑하올 부모님, 저를 당신들의 자식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동정 성모 마리아의 딸로 생각하십시오. 이 세상의 삶은 짧습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허망합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하느님과 함께 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의탁하는 자를 영원히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저를 찾지 마십시오. 제가 어디 숨어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집 사람들이 사방으로 찾아다니다가 사흘만에 어느 굴속에서 바르바라를 발견하였는데, 그곳은 거의 아무도 접근할 수 없을 만큼 험준한 곳이요, 사나운 짐승들이나 출몰할 만한 곳이었습니다. 겨우 열 살 지난 어린 바르바라는 그 굴속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하며, 자기 동무를 가르치기도 하고 끝까지 마음이 변하지 말자고 권면하기도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씩 굴에서 나와 풀뿌리를 캐어 식량 대신으로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바르바라는 그 황량한 곳에서 더할 수 없는 만족한 즐거움을 한껏 맛보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행복이 뜻밖에 오빠가 나타남으로 해서 한꺼번에 무너졌습니다. 오빠가 오는 것을 보고 호랑이를 본 것보다 더 무서워하였습니다. 바르바라는 자기가 갈망하는 낙원에 그대로 남아 있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오빠는 동생을 타이르고 달래고 엄포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바르바라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작은 몸뚱아리의 온 힘을 기울여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나 결국 오빠의 힘에 져서 억지로 아버지의 집으로 끌려 갔습니다.

집으로 끌려오니 어머니가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어떻게 그리 어리석은 짓을 한단 말이냐? 너는 마귀한테 놀림을 당하는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너 같은 어린애가 호랑이도 무섭지 않고, 굶어 죽는 것도 겁이 안 난단 말이냐?” 하고 나무랐습니다. 그러니까 바르바라는 “어머니, 걱정마셔요.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의탁하는 사람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셔요”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부터 바르바라는 규칙적으로 1주일에 두 번씩 금식재를 지키고, 고기와 생선이나 그와 같은 것들은 전혀 입데 대지도 않았습니다. 사순절 동안에는 날마다 하루에 한끼만 약간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기도하는 정신이 결코 중단된 적이 없습니다. 집안일을 할 때나 들일을 할 때나 항상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조선에서는 일상 기도문이 짧지 아니한데, 바르바라는 그것을 모두 암송하였습니다. 또한 교리문답책과 신자 교리책, 그리고 성녀 바르바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성인전 및 조선의 여러 순교자들의 행적, 그 밖에도 조선 사람들이 고상하고 신심 깊게 언문으로 쓴 다른 작은 신심서들도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바르바라가 성을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고 더워 죽겠다. 아이고 추워 죽겠다. 웬 바람이 이렇게 세게 부나, 웬 비가 이다지도 쏟아지나!” 하는 소리나 이와 비슷한 다른 말은 매우 자연스러운 감탄사지만, 이런 말이 바르바라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아무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부모로서는 바르바라에게 종교 일이거나 세속 일이거나 무엇을 시키려면 부모가 명령하거나 권고하거나 지시할 필요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부모의 뜻을 미리 알아차리고 모든 사람이 만족할 만큼 모든 일을 다 잘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바르바라의 과도한 열성과 지나친 육체 노동을 억제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면 바르바라는 “시간은 짧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활동해야 합니다. 이 육체는 머지않아 구더기의 양식이 될 것입니다. 이런 육신을 아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살아 있는 동안 힘껏 일해야 합니다”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병에 걸렸을 때도 신심 수업이나 고신 극기를 조금도 변함없이 실천해 나갔습니다. 사흘거리로 학질을 앓을 때에도 결코 자리에 누워 있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그렇게 육신을 학대하지 말라고 어머니가 꾸중을 하면, 바르바라는 “우리 힘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나 하느님께 의탁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바르바라가 그렇게 늘 고신 극기하고 힘든 일로 몸을 학대하면서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가 있는지 모든 사람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바르바라는 자기 동료들 중에서 가장 건강하고 용모가 아름다웠습니다.

바르바라는 열네 살 되었을 때 처음으로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고해 사제를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고해 사제께 동정을 지키려는 결심을 말씀드렸습니다. 고해 사제는 그러한 신분에 따르는 위험을 설명해 주면서 그러한 계획을 만류하며 결심을 바꾸어 결혼을 하라고 명령까지 했습니다.

그 다음해에 바르바라는 다시 같은 고해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자기 생각에 변함이 없고 자기 뜻을 계속 지키겠다고 그 신부님에게 말했습니다. 신부님은 동정의 위태로움을 다시 설명하고 동정을 지킬 결심을 바꾸어야 될 필요성의 이유들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성사를 받고 싶으면 동정을 지킬 결심을 바꾸고, 그러하지 아니하면 성사를 받지 말아라. 이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말하였습니다.

바르바라는 신부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듣고, 신부님이 내세운 조건을 충실히 지키지 못하고 성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고해 사제가 제시한 선택을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고 나서야 자기가 잘못 알아들은 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슬피 통곡하였는데 아무도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바르바라가 열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어떤 외교인한테서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이 외교인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합법적인 방법을 썼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하는 수 없이 폭력을 써서 바르바라를 강제로 납치해 가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바르바라의 부모와 오빠들은 엉뚱하게도 갖은 비방과 행패로 수모를 당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부모와 오빠들은 바르바라의 결심을 꺾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 썼습니다. “네가 결혼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제발 이웃 신자 청년과 결혼하기를 동의하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헛수고였습니다. 바르바라의 결심은 한결같이 확고부동하고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오히려 바르바라는 아버지와 오빠들이 저렇게도 겁이 많음을 비난하였습니다. “만일 오빠들이 저 외교인들의 핍박에서 저의 몸을 보호해 주실 수 없거나 보호해 줄 마음이 없다면 저를 혼자 내버려두세요. 저 혼자 어디든지 갈테니까요. 그러면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고 말하였습니다.

어느 날 외교인들이 납치하려고 쳐들어오자 바르바라는 산 속으로 달아나 수풀 속에 숨었습니다. 납치하러 온 자들은 바르바라를 찾아내지 못하자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분풀이로 행패를 톡톡히 부리고 갔습니다.

욕설과 행패를 견디다 못한 한 오빠가 바르바라를 찾으로 나섰습니다. 그 오빠는 밤새껏 큰소리로 바르바라를 불렀습니다. 바르바라는 오빠의 목소리인 줄을 잘 알았지만, 오빠가 배반할까봐 못 미더워서 숨은 데서 감히 응답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오빠가 다시 바르바라를 부르면서 찾아 나섰습니다. 바르바라가 숨은 곳에서 나와서 오빠를 위로했습니다. 바르바라가 혹시 호랑이한테 잡혀 먹히지나 않았을까 하여 밤새도록 걱정하였던 오빠는 바르바라가 눈앞에 나타나자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이슬에 흠뻑 젖은 바르바라가 오빠의 인도로 근심에 잠겨 있는 어머니 앞에 왔습니다. 바르바라는 밝은 낯으로 명랑하게 “어머니 왜 근심하십니까? 지극히 선하신 하느님께서 보호하시어 모든 것이 다 잘되어 나갈거예요. 저는 아무 탈없습니다”고 말하였습니다.

바르바라는 그런 후에도 더 산 속으로 도망가서 위험을 모면해야 했습니다. 마침내 바르바라는 모든 것을 버리고 부모와 오빠들과 함께 다른 고장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핍박을 당한 후 바르바라는 훨씬 더 무서운 시련을 겪어야 했지만, 그의 항구한 결심은 더욱 굳어질 뿐이었습니다.

세 차례나 고해소에 들어갔다가 성사를 거절당하고, 네 번째 고해소에 들어갔으나 또 그냥 쫓겨 나왔습니다. 주교님께서 바르바라를 여러 차례나 부르셨습니다. 타이르기도 하시고 권고도 하시며 위협도 하셨으나 바르바라가 듣지 아니하므로 마침내 바르바라와 그의 부모들에게 성사를 받지 못하도록 성사 금지의 처벌을 내렸습니다.

이 모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바르바라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나날이 더욱 열렬하고 더욱 철저하여져서 어떤 때는 자기의 가혹한 시련이 야속하여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하고, 자기의 가련한 신세가 서글퍼 흐느껴 울기도 하면서 날마다 고신 극기를 배가하였습니다.

저녁이 되면 혼자서 집을 나가 호랑이를 만날 것도 무서워하지 않고 호젓한 개울가로 가서 기도로 밤을 새우곤 했습니다. 저는 저의 관할 구역 교우촌을 순회하다가 바르바라가 사는 마을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복사인 레오의 집에서 잠시 동안 쉰 다음 기운을 차려 다시 공소 순회를 시작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르바라는 그곳에서 한 마장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바르바라는 제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곧 기쁨에 넘쳐 저를 보려고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그리고서는 저에게 시중을 들기 위해 레오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바르바라는 저를 본 후에는 성사를 받을 방법 외에는 다른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윤리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곳은 제 관할 구역 밖이었고, 따라서 저는 그 여자에게 대한 관할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다 그 가엾은 처녀는 주교님이 내리신 성사 금지 처벌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설명을 들은) 바르바라는 한잠도 자지 못하고 밤새 뜬눈으로 새웠습니다. 바르바라는 자기의 양심을 성찰하여 (자기가 범한 죄를 적은) 쪽지를 동무들에게 보여주면서 “대관절 이 죄들을 어떻게 하면 용서받게 될까?” 하고 한탄하였습니다. 또 병들어 앓고 있는 한 친구에게는 “나도 너처럼 병들어 앓기나 했으면 신부님이 나에게도 성사를 주시련만!”이라고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리고서는 바르바라는 기도와 울음으로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날이 새자 바르바라는 갑자기 끙끙 앓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날에는 죽음과는 아무 상관없이 여기 저기 뛰어다니며 힘든 일을 하던 그녀가 오늘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중에 자리에 눕게 된 것이었습니다. (불가피한 상황이니 만큼) 저는 이날 바르바라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하고, 다음날에는 성체를 받아 모시게 해 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르바라가 심한 고통 중에서도 쉴 새 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정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계속 불렀습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바르바라의 죽음이 임박한 줄로 여기고 종부성사를 받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바르바라는 아직은 그리 서두를 것 없다고 대답하며 자기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습니다.

하루가 지난 다음 저는 복사를 바르바라에게 보내어 종부성사를 받아야 할런지 살펴보고 또 권유도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바르바라는 다시 미루었습니다.

그 날 밤에 바르바라는 곁에 둘러 있는 사람들에게 신부님을 모셔다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은 급박하지 않고 임종이 가까워 오지 않았으며 틀립없이 이틑날까지 죽지 않고 견딜 것이니, 아직은 신부님을 모셔올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르바라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군요. 이렇게 캄캄한 밤중에 그 험한 길을 걸어오시도록 하는 것은 신부님께 번거롭게 구는 짓임을 저도 잘 압니다. 신부님께 그다지도 큰 불편을 끼쳐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그렇지만 신부님을 꼭 뵈어야 할 급한 일이 있으니 귀찮게 여기지 마시고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신부님을 모셔다 주셔요”

저는 곧 바르바라에게로 가서 고해성사와 종부성사를 집전해 주고 또 병자를 위한 성모 청원 미사를 드렸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바르바라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몸을 깨끗이 씻겨 주고, 명절 때의 새 옷으로 갈아 입혀서, 공소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청했습니다. 바르바라는 놀랍게도 무릎을 꿇고 노자 성체를 영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르바라는 그날도 하루 종일 몹시 앓고 있었으나 정신은 조금도 흐리지 않았습니다. 바르바라는 자기가 죽음을 더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맑은 정신을 보존하게 해 주시기를 하느님께 기도하였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그 청을 들어주시어 평소보다 훨씬 더 밝은 정신을 주셨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르바라는 앉아 있을 때나 음식을 먹을 때나 항상 기도 중에 있었습니다. 바르바라는 “지금 이 시각에도 하느님과 성모님께서 특별히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대해서 아직도 충분히 감사드리지 못하는 것 외에는 다른 고통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건강이 회복되면 맨 먼저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바르바라는 “저는 이 병든 육체를 떨어버리고 하늘에 계신 천상 아버지께로 가서 제가 마땅히 드려야 할 감사를 드리는 것 외에는 다른 원이 없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바르바라에게 마지막 작별을 하면서 “네가 세상을 떠난 후에 네 영혼의 안식을 위해 내가 미사를 드려 줄 터이니, 그 대신 너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되신 동정 성모님 앞에서 나를 기억해 다오” 라고 말했습니다. 바르바라는 더할 수 없이 평온하고 맑은 얼굴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바르바라가 마지막 숨을 거둘 즈음에 의원들이 여러 가지 침을 놓고 뜸을 뜨려고 하니까, 바르바라는 “저는 지금 숨을 거둘 참인데 이런 치료가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상처를 생각하고 이런 치료를 참아 받으라고 타일렀습니다. 바르바라는 그 말을 받아서 이 고통이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면 참아 받겠다고 복창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고상에만 눈을 고정시켜 똑바로 쳐다보면서 의원들이 하는 대로 내맡겼습니다. 바르바라는 전에는 침과 뜸을 맞아 본 적이 없었지만, 온 몸을 마구 찌르는 침과 뜸을 차분하고 평온하게 견디어 냈습니다.

바르바라는 여러 가지 구원에 유익한 말로 비애에 젖어 있는 자기 부모를 위로하고 삼종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리고서는 문 가까이 가서 잠시 동안 문지방에 팔을 짚고 있다가 몸이 땅바닥에 푹 쓰러지면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때는 1850년 9월 23일 저녁 6시쯤이었습니다. 바르바라의 나이는 겨우 18세였습니다.


바르바라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의 아름다운 모습과 열절한 신심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바르바라는 앓기 시작한 지 나흘만에 죽었습니다. 바르바라가 죽은 지 열흘이 지났으나 아직도 우리의 얼굴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고, 이제가지도 그녀를 애도하는 말들이 우리 입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바르바라의 죽음에서 느낀 것만큼 회한과 가책과 하느님 사랑의 감정을 충격적으로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사악이 그녀의 지력을 손상할까봐, 또 위선이 그녀의 총명을 흐리게 할까봐 바삐 하늘로 거둠을 받았으니, 그녀의 생애는 짧은 시간에 쇠진하였으나 많은 시간을 채웠도다” (성경구절) [(이 세상에 오래 살 수록 그녀의 착함이 손상될 수 있고 그녀가 자신의 성스러움에 대해서 교만해질 수 있기 전에 얼른 천당으로 데려가게 했다는 말)]

바르바라는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이에게 귀염을 받았고, 가는 곳마다 모든 이에게 신심과 천주교 교리의 물을 들였습니다. 이처럼 순결한 영혼들의 그토록 거룩한 원의와 숭고한 결심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성사를 금지하면서까지 동정 생활을 막아야 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심정은 얼마나 안타까운 것이겠습니까!

저는 조선에 들어온 후 한 번도 휴식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7월 한 달 동안만 같은 집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고 언제나 시골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습니다. 중국에서 서울까지 여행한 것을 빼고도 1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5천 리를 걸어다녔습니다. 저는 이처럼 긴 여행과 이 모든 고된 일을 하면서도 하느님의 은혜로 건강은 늘 좋았습니다.

제가 순방한 교우 수는 3,815명인데, 그 중에서 2,401명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하였고, 1,764명에게 성체를 영해 주었습니다. 어른 영세자가 181명이고, 아기 영세자가 94명이며, 대세를 받은 916명에게 세례성사 보례를 집전하였습니다. 예비자로 278명을 등록시켰고, 죽어 가는 외교인 아기 455명에게 임종 대세를 집전하였습니다.

신자들은 거의 모두 다 외교인들이 경작할 수 없는 험악한 산 속에서 외교인들과 아주 떨어져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신자들은 거의 다 교리에 밝고 천주교 법규도 열심히 잘 지키고 삽니다. 그러나 평야 지대인 고향에서 친척들과 외교인들 사이에 섞여 사는 신자들은 대체로 교리에 무식하고 신앙 생활도 열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좀더 열심한 신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육신과 세속의 모든 관계를 끊고 산 속으로 들어가 담배와 조를 심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산 속에서도 오래 살수는 없습니다. 신자로 사노라면 점차 외교인들한테 알려지게 되어 박해가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천주교를 믿으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극도의 비참이 즉각적으로 닥쳐올 것이기 때문에 입교를 망설이고 있습니다. 특 히 여인들은 신앙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다 되어 있지만, 입교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자기 집에서 가족과 같이 지내면 신자의 본분을 다 실천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해서 자기 집을 떠나게 되면 자기 몸을 의지할 곳을 마련할 수가 도무지 없고, 정처 없이 떠돌아나니다가는 외교인들에게 납치 당할 큰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1839년 박해와 흉년이 들었을 때, 젊은 여인들이 고향을 버리고 도망하여 낯선 타향에 몸을 피하고서는 빌어먹으며 정처 없이 방황하다가 외교인들의 첩이나 종이 되고만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 이 불쌍한 여인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들을 때 저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는지 모릅니다. 1839 년의 그 가혹한 박해가 있은 후 우리 종교를 가장 미워하는 어떤 원수가 신자들을 모함하는 전혀 터무니없는 허무맹랑한 거짓말로 글을 잔뜩 써서 조정에 냈습니다. 조정에서는 신자들에 대한 백성의 분노를 선동하고, 특히 프랑스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이 글을 조정의 이름으로 발행하여 조선 적국 각 지방에 배포했습니다.


그러나 박해자들이 무서워서 그런 거짓말투성이의 중상을 감히 반박할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처럼 파렴치한 모함을 폭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어떤 모순점을 조금이라도 폭로하면 즉시 그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탐색을 당하고, 신자들은 보람없이 역적으로 몰려 학살을 당할 것입니다.

프랑스 군함이 고군산도에서 파선했을 때, 그 다음 해에 반드시 다시 오겠다고 단단히 다짐하였으나, 3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조선 사람들은 프랑스인들을 조금도 두려워 할 것이 없는 한낱 허풍쟁이들로 여기고 있습니다.


지금 조선 조정은 수많은 당파로 분열되어 서로 헐뜯는 싸움으로 지새어 나날이 쇠약해짐으로써 전례 없이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전 임금(헌종)은 무절제한 과음과 방종한 여색으로 23세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고, 왕족 출신의 18세 된 새 임금(철종)이 즉위하였습니다. 새 임금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강화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사람입니다.


새 임금의 조모(송마리아)와 증조모(신마리아)는 신자로서 신앙 때문에 살해되었습니다. 새 임금의 부친(은언군 이인)은 신자가 아니었는데도 천주교 때문에 학살당하였고, 그의 형(상계군 이담)은 모함을 당하여 역적으로 몰려 살해되었습니다.


항 간에 떠도는 소문을 들으면, 실제로 조선 왕국을 통치하고 있는 이는 죽은 임금의 조모이고, 그 조모에 의하여 왕위에 올려진 현재의 임금은 아무 권한이나 권위도 없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왕국의 대신들 상호간에 끊임없이 찢어 할퀴는 당파싸움의 적개심 때문에 왕위를 잃고 목숨마저 잃게 될 큰 위험에 처해 있는데, 대신들의 불화는 임금의 권위로도 절대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합니다.


대신이라는 사람들은 질투심으로 서로서로 함정을 파는 일만하고, 또 속임수와 교활한 술책으로 모든 책임을 임금에게 씌우는 음모를 꾸미는 일만 계속합니다. 조 선의 현 정세 아래서는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하고 이런 한심한 부조리를 바로잡을 방도가 전혀 없습니다. 백성은 각종 세금과 수탈과 착취에 짓밟혀 극도의 불행에 빠져 있습니다. 조정 관원들이나 포졸들이나 양반들이나 모두 하나 같이 가렴주구에 눈이 먼 약탈자들입니다. 가난한 백성은 1년 내내 고달프게 일하지만 조정 관리들의 탐욕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 고작입니다.

이런 처참한 사정을 말씀드리자면 아직도 드릴 말씀이 많지만 이쯤 끝내겠습니다. 이제 다른 비참한 사정을 해결하기 위한 구제책을 강구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생략하고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비위생적인 물을 개량할 처방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박학하므로 그런 처방 한 가지를 우리에게 일러줄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이 나라에는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기에 상당히 좋은 곳이 평야에나 산골에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주민들은 실성하거나 간질에 걸리고, 피 섞인 가래침이 나오며, 몸이 나른해지는 등등 여러 가지 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모든 질병이 물의 비위생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어집니다. 그러니 물을 정화하는 방법을 아시면 분명하게 일러주시기 바랍니다.

또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이 청을 신부님께서 들어주신다면 우리 불쌍한 신자들에게 가장 큰 위안을 마련해 주시는 셈이 됩니다. 신자들은 성물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불같습니다. 상본이나 고상이나 성패를 장만하기 위해서는 아끼는 것이 없습니다. 성물을 장만하기 위해서는 생존에 꼭 필요한 전 재산을 나누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선뜻 다 내놓습니다.

성물을 사기 위하여 신자들로부터 돈을 모으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그 돈을 보내드리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돈이 은화라면 쉽게 보내 드릴 수 있겠지만, 조선에서는 은화라는 것이 별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만일 신부님께서 성물을 살 만한 여분의 돈이 있으시면, 신부님께서 얼마간의 크고 작은 십자고상과 성패와 상본 등을 사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상본은 예수님, 성모 마리아, 성 요셉, 세자 성 요한, 사도들, 성학자들, 그 밖의 성인 호칭 기도에 나오는 성인 성녀들의 상본들이면 됩니다.

그 물건들은 튼튼하게 잘 만들어진 것이라야 합니다. 그 대금을 지불할 수 있도록 금액을 알려 주시면 나중에 기회가 닿는 대로 그 값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다블뤼 신부님은 아직 아무 일도 못하고 계십니다. 주교님과 저만이 공소를 순회하면서 신자들을 찾아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는 꽤 편안히 지내고 있는 셈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전반적 박해는 없으나 부분적 박해는 결코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극히 좋으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에 대한 저 박해자들이 마침내 교회의 진리를 깨닫고 그리스도의 양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 주 하느님을 기쁜 마음으로 적극적이며 자유롭게 섬기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이제 이 서한을 끝마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극히 사랑하고 공경하는 모든 신부님들께 거듭거듭 감사와 인사를 드립니다. 불쌍한 우리 모든 조선 사람들을 자주자주 기억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공경하올 사부님께, 지극히 미약한 종, 최 토마스가 올립니다.


<출처 : 정진석 역, 『너는 주추놓고 나는 세우고』1995년도>

브뤼기에르 주교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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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동료 여러분. 선교성회에서 조선을 여러분에게 맏기려고 하였다는 것과 여러분은 적어도 당분간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고 계시다는 것을, 모든 포교지에 보내신 공동편지를 읽고 알았읍니다. 돈도 없고, 선교사의 수효는 적고, 다른 포교지에 부족한 것도 많고, 그 지방에 들어가는 데 거의 극복하지 못할 난관이 가로 놓여 있고, 또 불행한 신입교우들이 선교사들을 국내에 인도하여들이는 데 사용하겠다는 방법이 부족하고 한 것이 이 일을 좀 더 좋은 시기로 미룰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생각을 여러분은 가지셨읍니다...소조뽈리스 (Sozopolis) 주교님은 우리 회가 할 수 있는대로 빨리 이 포교지방을 맏아 주기를 진심으로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사정을 편지로 여러분께 말씀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 일이 성공하기를 원하시는 주교님의 열의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내 열의를 당하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 불운한 교우들에게 이익이 되기를 원하는 간결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이 편지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들에 대하여 아주 착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다만 달리는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직 몇 해를 더 기다리기로 결정하였으리라는 것을 미리부터 확신하는 바입니디. 이러한 동기는 찬성할만하고 매우 슬기로운 것이며 성소에서도 거기에 동조하는듯 하였읍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아주 해결되어서 다시 논의되고 재검토될 수 없을 지경으로 되었읍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이유를 하나 하나 되살려 가면서 몇 가지 의견을 첨부하고자 하니, 이것을 祭臺(제대) 아래에서 검토하시고 세심하게 고찰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감히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잘난체 한다거나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들에게 충고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고, 오직 내 양심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1. 우리는 기금이 없다. 그러나 전교회의 덕으로 수지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그뿐 아니라 선교성소에서 몇 해 동안은 보조를 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보조금들은 끊어질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겠지요. 회원이 원하면 언제든지 탈퇴할 수 있는 회에서는 모든 것이 불안정하니까, 그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시작된지가 불과 얼마 안됩니다. 프랑스에서 이 사업을 시작한 교구는 반이 될까말까 합니다. 포교지에 대한 열의가 지금 막 생겨난 참입니다. 그러니까 몇 해 동안은 이 열의가 식지 않을 것입니다. 좀 더 지나면 이 열의가 식을 수도 있겠지요. 사람이 하는 일이란 이런 운명을 타고 났고, 더구나 프랑스에서는 다른 어떤 곳에서 보다도 더욱 그러하니까요. 그러나 그 때까지는 지혜롭게 절약을 하며 만일의 경우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이고, 또 내일을 너무 걱정하여 섭리를 모욕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천주께서 새로운 財源(재원)을 마련하여 주 실 것입니다.
우리 신학교에서 일찌기 불가능한 일을 하기를 거부한 적이 있었읍니까. 모든 희망이 없는 것 같아 보이던 그 때에 포교지 중의 하나라도 포기한 일이 있었읍니까. 그런 일을 없었지요. 우리는 천주께로 눈을 돌이켰으니, 악에서 선을 끌어내실 수 있는 그 분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고, 우리의 희망은 저버려지지 않았읍니다. 천주께서는 포교지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기적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 경우에 있어서는 천주의 전능이 작아졌단 말씁입니까. 혹은 우리의 신앙과 망덕이 줄어들었단 말씁입니까.

2. 우리는 선교사가 없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이유 중에서도 가장 약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젊은 신부들이 포교지방을 지원하는 수효가 지금보다 더 많았던 때가 언제 있었읍니까. 공동편지에는 한꺼번에 15명 내지 18명까지 지원자가 있었다는 말이 있읍니다. 그리고 매일 같이 다른 지원자들이 많이 올 것을 기대한다고 하였읍니다. 하기는 신학교에 들어왔다가 병으로 인하여 돌아간 사람이 몇은 됩니다. 그러나 언제고 다시 올 희망을 포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지 않았읍니까. 그뿐 아니라, 지원자가 없다고 우선 가정한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이 하면 틀림없이 지원자들이 얼마든지 모여들 것입니다. '교훈이 되는 세 서한 집' (인도와 중국 등지에서 선교사들이 보낸 서한을 수록하여 간행한 단행본. Nouvelles Lettres edifiantes des Missions de la Chine et des Indes Orientales, t. 1~5, Paris 1818~1820.) 의 조선이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를 모두 인쇄하고 거기에다가 열심한 주선교우들이 여러번에 걸쳐 우리 교황성부께 올린 편지도 인쇄하여 넣으십시오. 그 寫本(사본)은 쉽게 장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프랑스의 소신학교와 대신학교에 전부 보내며, 성품을 지망하는 그 모든 신학생들의 애덕과 열성에 간절한 호소를 하십시오. 그러면 오래지 않아 선교사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나는 프랑스 사람들의 성격을 잘 압니다. 이 위험한 포교지에서 봉착하게 될 가지 가지의 어려움은 그들의 일성을 자극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불어 넣어 주는 역할 밖에는 하지 않을 것이니, 지원자 한 사람을 구하면 열 명이나 올 것입니다.

3. 다른 포교지에도 급한 일이 많다. 급한 일은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저 불쌍한 조선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것만큼 급한 일은 없읍니다. 그 도움이 없이는 그 불쌍한 삶을 계속하여 나갈 수 없는 불행한 사람을 돕기 위하여는 필요한 것까지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애덕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천주교를 위하여 그렇게도 많은 공을 세운 수많은 열심한 신입 교우들에게, 더구나 신덕이 아직 약하고 가지가지의 유혹에 둘러싸여 있는 수천 명 교우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친다는 것도 역시 이 의무가 엄중히 명하는 것이 아닙니까. 지구 저 끝에 있는 저 불우한 교우들은 여러 해 전부터 교우들의 공통 아버지이신 교황께 두 손을 모아 쳐들고 구원을 청하고 있읍니다. 모든 교회를 맡아 보살피시는 그 분은 우리 회를 선택하신다는 영광을 우리에게 내리셨고 두 번이나 우리의 애덕에 호소하셨읍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직도 기다려야 된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조선은 우리 포교지에 속하지 않았으니 우리는 거기 대한 책임이 없다고 말할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나도 동감입니다. 그러나 자선섬이 있는 아버지는 자기 아이들에게 먹일 넉넉치 못한 음식을 조금 떼어서 자기 발 아래에서 숨이 져 가는 불쌍한 나그네를 도와주는 것을 의무로 생각할 것이라는 점에는 여러분도 나와 동감일 것입니다. 신부 한 두명 쯤 줄어든다 하여도 우리 포교지 전체로 볼 때에는 그리 큰 공백상태를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버림 받은 포교지로 볼 때에는 이 신부 두 명이 말할 수 없는 은혜가 될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샴 (태국) 포교지에 관심을 가진다 하더라도, 여기에 선교사 한 분을 빼내어 슬픔에 잠긴 저 포교지방에 보내는 것은 조금도 가슴 아파하지 않겠읍니다.

4. 그 나라를 뚫고 들어가기가 힘든다. 이 점이야말로 여러 가지 반대 이유 중에서 가장 그럴듯하다는 것을 나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결국 어떤 계획이 어렵다고 하여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또 세속의 자식들은 그들의 이해 관계가 개재하여 있을 때에는 곤난 때문에 물러서는 법이 없읍니다. 그러면 광명의 자식들만이 천주의 영광과 사람의 구령사정에 있어서 겁을 내고 소극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북경에서 출발한 중국인 신부 한 분이 조선에 들어가 박해가 극심한 가운데서 여러 해 동안 성직을 행하다가 영광스러운 순교로 포교사업을 끝막았는데, 四川(사천)이나 山西(산서)에 가 있는 서양인 신부는 그렇게 할 수 없단 말씀입니까. 몇 해 되지 않는 동안에 편지 여려 장을 로마에까지 보낼 수 있었던 조선사람들이 신부 한 사람을 자기네 나라에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겠읍니까. 나는 여러분이 어떤 대답을 하실지 미리 알고 있읍니다. 편지는 북경을 거치게 된다고, 거기가 유일한 연락점이라고 하시겠지요. 그러면 북경에 편지를 보내서 山西省(산서성)이나 四川省(사천성) 이러 저러한 읍내에 조선교우들을 기다리는 선교사가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립니다. 조선교우들에게 연락한 다음에는, 조선으로 향하여 길을 계속할 방법을 강구합니다. 중국인 보행군의 인도로 만리장성까지 가야 할지를 생각하여 봅니다. 만날 장소와 암호를 정합니다. 슬기롭고 약삭빠르게 행동하기 위한 모든 방법을 강구합니다. 이리하여 마침내는 성공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넘을 수 없는 난관이 가로 놓여 있어 저 나라에 뚫고 들어가기가 불가능하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불가능한 것을 해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눈에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천주께는 불가능하지 않으니까요. 바다로 해서 조선에 들어오라고 일러준 방법은, 서양인이 조선과 조금도 부역을 하지 않기 때문이든지 조선 沿岸(연안)으로 가끔 무역을 하러 가는 중국인들의 성실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든지, 실천에 옮길 수가 없다는 의견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프란치스꼬 사베리오 성인이 이런 생각 때문에 중국 해적선을 타지 않게 되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최초의 敎區長(교구장)들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자기네 교우들을 찾아가야 하였을 때에 중국인들의 성실성을 믿지 않았읍니까. 이것이 안전한 방법이 아님은 나도 인정합니다. 중국인들은 자기들이 인도하는 나그네들이 돈을 가졌다고 생각할 때에는 가끔 그들의 목을 베어 죽이는 일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뿐더러 신중에 신중을 다한 뒤에 오직 천주의 명령을 준행하겠다는 마음 만으로 닥쳐올지도 모르는 위험을 용감히 무릅쓰는 경우에는 천주의 특별한 섭리를 바랄 수 있는 권리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겠읍니까. 천주의 명령을 준행한다는 말씀을 하였읍니다. 이 말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 나왔읍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삭제한다든지 조금이라도 바꿔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천주께서 당신 사도들에게 가서 만민을 가르치라는 명령을 밝히 내리실 때에 조선을 빼놓으신 것입니까. 그러나 지금과 같은 환경 속에 놓여 있는 저 관심 끄는 교회를 위하여는 이 명령이 특히 엄중하여지는 것입니다. 아니, 복음의 빛을 받기가 바쁘게 신자가 된 한 가련한 조선 사람이 사도가 되어 얼마 안되는 동안에 수천 명의 동포를 입교시켰는데, 이 훌륭한 사업이 계속될 수가 없는 것이었다면, 천주께서 그것을 허락하셨겠읍니까. 신덕의 빛이 한 순간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이 그들을 그전보다도 더 캄캄한 암흑 속에 몰아 넣기 위한 것 뿐이었읍니까. 말하자면 자기의 힘으로 이루어져서 시초부터 용감한 순교자와 순결한 동정녀들을 그렇게도 많이 예수 그리스도께 바쳐 使徒時代(사도시대)에 가장 위대하고 가장 훌륭한 것을 바쳤던 것과 비길만한 일을 한 저 새로운 교회, 귀양살이와 종살이를 하고 재산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도 망나니들의 도끼날 밑에서 아직 복음을 전하고 신입교우의 수효를 끝없이 불려가는 용감한 증거자들을 아직도 수 많이 가지고 있는 저 교회, 그래 저 교회가 버림을 받아야 합니까. 아니, 지극히 인자하신 천주께서는 당신을 알자 마자 공경하고 사랑한 조선 사람들에게 대하여는 갑자기 엄하고 매정하게 되셨읍니까.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둘러싸여 그의 일꾼이 아무도 처들에게까지 다다를 수 없게 만들려 하시겠읍니까. 내 머리에 이와 같은 생각이 잠시나마 생겨난다면, 나는 섭리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5. 너무 많은 일을 하면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는 마지막 이유가 남아 있읍니다. 그러나 옛날 적언은 언제나 증명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도 하려니와, 이 격언을 이 경우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이 위에 말씀 드린 것으로 우리 회가 아직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또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고 믿습니다. 나도 여러번 들은 일이 있읍니다마는, 주교가 선교사 지원자들에게 대하여 가장 큰 호의를 보여 주는 교구에는 사제직을 지망하는 사람들의 수효가 늘 많다는 사실을 보아 왔읍니다. 버림 받은 교회를 지원하기 위하여 용감한 희생을 한 어떤 회에 이와 비슷한 은총이 내려지리라고 바랄 수는 없겠읍니다....
어떻든, 여러분이 십사숙고 한 뒤에 그래도 뒤로 미루는 것이 현명한 일이고 천주교의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신다면, 아주 간단한 계획을 하나 제안하겠읍니다.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기면 조선의 신입교우들에게는 대단히 유익할 수 밖에 없고, 또 우리가 현재 책임 지고 있는 포교지의 물질적 이익도 영신적 이익도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래에 대한 아무런 언질을 주지 말고, 우선 신부 1,2명을 보내겠다고 布敎聖省(포교성성)에 제외하십시오. 이들은 열심과 현명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모두 시험하여 보면 될 것입니다. 혹시 조선에 들어갈 수 가 있게 되면, 이들은 자기들 힘으로나 신입교우들의 도움으로 그들의 뒤를 따를 선교사들을 맞아들일 방법을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방법은 서양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곳에 이른 신부는 목자가 없기 때문에 영원히 소멸될 위험을 시시각각으로 당하고 있는 저 포교지를 지탱하여 나갈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섭리는 다른 구제착을 마련하실 것입니다. 만일 이 나라에 파견된 신부가 거기에 들어갈 수가 없다든지 사형을 당한다든지 하면 그 당자에게는 이익이 될 것이고, 그렇다고 다른 포교지에 대하여 크나큰 손해도 안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았다는 만족감을 가지게 될 것이고, 自責(자책)할 거리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위험한 사업을 맡을 신부가 누구이겠읍니까. 내가 하겠읍니다. 소조뽈리스 (Sozopolis) 주교님이 아무리 당신 교구에 선교사가 많이 있기를 원하신다 하더라도 불행한 조선 사람들을 위하여는 신부 한 사람은 기꺼이 내놓으실 것입니다. 주교님께 벌써 그 말씀을 드렸더니, 여러분께 편지를 보내라고 하셨읍니다. 주교님은 내 편지를 읽으셨고, 교황성하께서 내 청을 들어 주신다면 무엇이든지 하실 결심을 하고 계십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하여 로마에 글을 올렸다는 것을 숨기지 않으렵니다. 그러나 그 편지에는 여러분이 내린 듯싶은 결정에 대하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나 자신에 관할 일 만을 사뢰었을 뿐입니다.
지금의 나의 임무로 인하여 내 제의가 거부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교님은 교황 성하에게서 갑사 (Capsa) 명의 보좌주교를 선택하여도 좋다는 편지를 받으시고, 비록 나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나를 지목하신다는 뜻을 암시하여 주셨읍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말씀드린다하여도 주교님은 내 동의를 요구하실 것으로 짐작하지만, 보좌주교로 임명되는 것이 내 계획에 무슨 방해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교라고 하여 몸이 덜 튼튼하다거나 성직을 수행하는 데 덜 적합할 리도 없는 것이고, 오히려 좋은 일을 하기 위한 은총을 더 많이 받고, 더 광범한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멀리 떨어진 나라에 파견되는 선교사는 오랫동안 서양과의 연락이 끊어질지도 모르는데, 그가 보통 신부에 지나지 않는 경우에는 매우 곤난한 일을 당하는 일이 많을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교라면 열심한 신입교우들의 재질과 신심을 확인한 후에 그들을 사제품에 올려, 젊은 성직자들을 양성하기 위한 항구적인 시설을 세울만한 기회를 천주의 섭리가 내려 주실 때까지의 공간을 메울 수 가 있을 것입니다. 주교가 이 포교지에서 저 포교지로 전임되는 예는 드문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내 제안을 교황청에서 들어 주시도록 전력을 다하니 후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주교님은 내 뜻을 아시고 찬성하시며, 시간만 허락하면 직접 포교성성에 편지를 내겠다고 하십니다.

끝으로 성 빈첸시오·아·바오로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 글을 끝맺을까 합니다. "자아, 부인들이여, 여러분은 동정심과 박애심으로 이 어린이들을 아들 딸로 맞아들이게 되었읍니다. 이 어린이들을 낳은 어머니들이 이들을 버린 뒤로 여러분은 은총에 의한 이들의 어머니가 되었읍니다. 이제는 여러분도 어린이들을 버리기를 원하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어머니 노릇을 그만 두고 이들의 재판관이 되십시오. 이들의 운명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으니 여러분이 계속해서 자애롭게 보살펴 주시면 이들은 살 것이고, 그와 반대로 저버리시면 틀림없이 죽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북경교회가 저 열심하고 불쌍한 신입교우들을 버리지는 않았으면서 절대로 구원하여 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때부터 교황 성하께서는 우리 회더러 저들의 어머니와 의지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시니, 저들의 운명은 말하자면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 하겠읍니다. 여러분이 포교성성의 거기서부터 (??)의 넓은 지역에 신앙이 번져 나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선이 일본과 이웃하여 있고, 이 두 나라 사이에 행하여지는 교류라든지 풍속과 성격이 같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점으로 보아 조선 교우들이 불운한 일본 사람들과 북해도 기타 지방 사람들의 의지가 되고 새로운 사도가 될 희망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여러분이 이런 포교지를 포기하시면, 구원도 위로도 받지 못하는 저 불쌍한 신입교우들은 실망낙담하여 옛날 미신에 다시 빠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이렇게 되면 이 먼 나라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전파할 희망은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말것입니다.

교황파견선교사 브뤼기에르. 방콕에서 1829년 5월 19일 (양력)

Wednesday, November 4, 2009

김종한 안드레아 편지

아랫 글에서 중요한 부분:

세상 사에서도 좋은 기회를 놓치면 그것을 다시 얻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구령사정에 있어서이겠습니다.

나는 천주교에 입교할 적에 천주를 섬기고 내 영혼을 구하는 것 밖에 다른 목적이 없었습니다.

우리 교우들은 천주교를 믿기 시작하면 천주를 섬기고 우리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 멀리 아무도 없는 사람 없는 지방을 찾아 갑니다. 우리는 우리 구원을 위하여 온갖 희생을 당합니다. 우리는 역경이거나 순경이거나, 모든 것을 천주의 섭리로 생각합니다.

비록 각 사람이 따로 따로 떨어져 한 지체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마는, 성교회의 머리는 천주님이요, 목은 동정 성모 마리아이시며, 우리들은 모두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머리를 직접 해하지 않는다 하여도, 해하는 것은 곧 머리를 해하는 것이요, 이와 마찬가지로 지체를 사랑하는 것은 곧 머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제 천주를 사랑하면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고, 사람들을 사랑하면 천주를 또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전체:
김종한 안드레아가 자기 형에게 보낸 둘째 번 편지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
초봄에 형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니 대단히 슬프기는 합니다마는, 아무도 죽음을 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가장 요긴하고 가장 중요한 일은 착하게 죽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무엇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읍시까. 사람의 가장 큰 도리는 천주를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고, 천국을 얻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큰 본분을 채우지 않고 세월을 허송한다면, 살아서 무엇하겠읍니까.
이 본분을 생각하지 않고 세상에 태어났다가 사람이 또 그 모양으로 세상을 떠난다면, 그것은 태어나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할 것이며 짐승보다도 못한 처지에 놓여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짐승은 죽으면 허무로 돌아가지마는, 사람은 그렇지 않아서 그 영혼을 구하지 못하면 영원한 죽음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 말은 무서운 말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죽게 마련인 육신이 죽음을 무서워한다면, 영원히 살게 마련인 영혼은 얼마나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겠읍니까. 지금 지옥에 떨어지면, 살되 진정으로 살지 못하며, 죽되 죽을 수가 없읍니다. 수만년을 거기서 지났다 해도 언제나 시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슬프고 슬프다. 하늘과 해의 광명을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것! 언제나 캄캄한 시냇못 속에 빠져 있다는 것! 이것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그러나 한편 지옥의 괴로음을 생각하면, 이 세상의 어려움과 괴로움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세상의 병과 재난을 고생스럽게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잘 이용할 줄만 알게 되면, 그것들이 구원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육신은 생명을 이어나갈 만한 것을 찾아 내는데, 어떻게 영혼은 그렇게 할 수가 없겠읍니까. 이 세상 물건은 본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것을 선용하면 좋은 것이 되고, 악용하면 나쁜 것이 됩니다. 그것은 마치 올라가는 데도 쓰이고 내려가는 데도 쓰이는 사다리와 같은 것이어서, 어떤 물건이든지 우리가 죄를 피하고 공을 세우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무슨 일이든지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위하여 하십시오. 그러면 간선자가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착한 지향이나 나쁜 의향에 달린 것이니, 형님은 아무리 큰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예수를 위하여 참아 견디십시오. 그러면 그 어려운 일들이 구원을 이룩하고 천국을 얻게 하여 줍니다. 그러니까 고통과 고뇌로 가득 찬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천주의 영광만을 찾으십시오. 마귀와 육신과 세상의 산을 무너뜨리고 영원한 행복을 향하여 날아가십시오.
저로 말씀드리며 이 괴로운 곳에 들어온 지가 벌써 1년이나 디었는데, 아주 특별한 은혜로 몸 성히 잘 있으니, 이 은혜를 천주게 감사하는 바입니다. 저는 순교를 향하여 가는 중이며, 이 마지막 은혜를 감히 바라기까지합니다마는, 이 은혜를 받기에는 너무도 부당합니다. 모든 일이 질질 끌어가기만 하고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으므로, 저는 몹시 겁이 납니다. 그로 인하여 육신은 편합니다마는 영혼은 그만큼 더 병이 들고, 이렇게 살아 있는 육신 속에서 영혼은 마치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제가 만일 이 훌륭한 은혜를 얻지 못한다면, 이 후에는 어떻게 삼구와 대항해 나가겠습니까. 육신이 약한 때에는 영혼이 더 강해집니다. 그리고 영혼이 약해지면, 육신이 성하게 됩니다.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만약에 제가 이번 기회를 놓지면, 그것을 영영 다시 찾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형편을 생각하면 할수록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겁이 납니다. 근거없이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온전히 공으로 주시는 천주의 은총을 바라고, 둘째로는 여러 교우들의 기도를 믿습니다. 그러니까 전심 전력으로 기도하여 주십시오. 제가 산림속의 나무같이 되지 말고, 열매를 맺도록 날마다 기도하여 주십시오.
...
세월은 흐르는 물 같아, 우리가 서로 만나지 못한 지가 어언 1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저나 형이나 고생은 아마 매 일반일 것입니다. 가끔 형의 소식은 들었습니다. 이 무서운 겨울 동안 형은 많은 곤난을 당하며서도 살아 계시다니, 천주를 찬미합시다. 나는 지금 신앙을 위하여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훌륭한 처지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순교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질 뿐 아직 내 죄 때문에 아리따운 순교의 문턱에 머무르고 있을 뿐입니다. 결말이 지어지지 않고, 질질 끌어가기만 합니다. 나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습니다. 만일 이대로만 간다면, 이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세월을 보배입니다. 그것을 한 번 잃기만 하면 영영 도로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 시간에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나 노력하게 되겠습니까. 세상 사에서도 좋은 기회를 놓치면 그것을 다시 얻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구령사정에 있어서이겠습니다.
나는 천주교에 입교할 적에 천주를 섬기고 내 영혼을 구하는 것 밖에 다른 목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당하는 처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별로 낙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내 아내가 곤난한 지경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괴롭고 슬픕니다. 내 아내는 겨울의 ??중에 몸을 부접할 곳이 없으며, 그가 있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친척이 아니면 친지라고는 하지마는, 내가 이런 처지에 있으므로 아무도 그를 도와 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끔 자기 자신의 몸이 위태로와질까 봐 겁난다고 핑계하는 바람에 내 아내는 다른 데로 몸담을 곳을 찾아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어찌 이렇게까지 무정하고 무관심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교우들은 천주교를 믿기 시작하면 천주를 섬기고 우리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 멀리 아무도 없는 사람 없는 지방을 찾아 갑니다. 우리는 우리 구원을 위하여 온갖 희생을 당합니다. 우리는 역경이거나 순경이거나, 모든 것을 천주의 섭리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서 오는 모든 곤란이 천주의 명으로 되는 것이고, 기쁨이나 괴로움이 우리가 잘 쓰면 모두 구원되는 방법이 된다 하더라도, 아무 의지없이 외로이 있는 자들을 도와 주는 것이 더욱 더 훌룡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몸담을 곳이 없는 내 아내를 보살펴 주십니오. 내 아내를 형의 집에 받아들이고 친척처럼 대하며, 그의 육신과 영혼이 생명을 보존하여 주는 데 힘쓰시면, 형은 그것으로 형 자신의 구원의 일을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 아내를 마음놓고 형에게 부탁합니다. 형의 따님이 우리와 함께 갇혀 있기 때문에 나는 이 부탁을 한층 더 마음 가볍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몇 해 동안이나 더 이와 같은 가통을 당하게 될는지는 모르지마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할 수 있는 대로 따님의 용기를 북돋아 주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서로 보상이 될 것입니다. 애덕을 가지고야 우리가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천주께서도 이 세상을 애덕 위에 세우셨습니다. 만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진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보존되겠습니까. 성교회는 오직 한 몸을 이룰 뿐기고, 하늘과 땅이 하나의 전체를 이룰 뿐이며, 세상도 또한 하나의 전체를 이룰 뿐입니다. 합심과 사랑 위에 자리잡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 육체는 많은 지체가 있는데,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지체가 어디 있으며, 우리가 떼어 버렸으면 하는 지체는 또 어떤 것입니까. 사람은 서로 서로 도움으로만 사는 것이니 육신은 영혼을, 영혼은 욕신을 도와야 합니다. 생명을 보존하는 데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비록 각 사람이 따로 따로 떨어져 한 지체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마는, 성교회의 머리는 천주님이요, 목은 동정 성모 마리아이시며, 우리들은 모두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머리를 직접 해하지 않는다 하여도, 해하는 것은 곧 머리를 해하는 것이요, 이와 마찬가지로 지체를 사랑하는 것은 곧 머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제 천주를 사랑하면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고, 사람들을 사랑하면 천주를 또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천주교회사 (중) p. 75-80